이론상 환율은 무역균형을 향해 움직여 간다. 가령 한국과 미국의 교역에서 한국이 많은 흑자를 내면 그 결과로 한국에는 결제대금으로 받은 미국 달러화가 넘치게 된다. 화폐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상대가격이 결정되므로 한국에서 달러화가 남아 돌면 달러화의 원화에 대한 상대가격이 낮아져, 원화의 대 달러화 환율이 떨어진다. 원화 환율이 낮아지면 미국 상품의 한국 상품에 대한 가격경쟁력이 커져서 한국의 무역흑자는 줄어들게 된다. 조정이 지나쳐 대미 무역흑자가 무역적자로 바뀌면 달러화 수요가 늘어 환율이 올라간다.
■ 다만 환율과 무역수지가 상호작용하며 동시에 균형을 찾아 움직이려면 몇 가지 전제가 성취돼야 한다. 우선 교역 대상인 상품이나 재화의 가격 경쟁력이 관세나 비관세 장벽 등 다른 요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완전 자유무역체제, 각국 통화 가치가 시장의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완전 변동환율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유무역 확산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자유무역은 요원하다. 또 선진국이 오래 전에 도입했고, 한국도 뒤따른 변동환율제도 완전 변동환율제와는 거리가 있다. 금리 조절 등 각국 통화당국 고유의 정책수단은 환율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 주요 선진국은 대외 결제수단이기 이전에 국내 통화로서의 원활한 기능을 위한 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통화 자체가 투자대상이 되는 마당이어서 통화 안정을 위한 각종 정책수단은 더욱 확고해질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원화는 시장에서는 미 달러화에 대한 가치만 결정하고, 나머지 통화에 대한 환율은 개별 통화의 국제시장 달러화 가치를 그대로 대입해서 나타낸다. 이런 환율이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ㆍ지역과의 무역수지 실세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일본이 운을 뗀 원화 절상 압력에 머지않아 다른 국가ㆍ지역이 가세할 것이 점쳐지는 이유다.
■ 하반기 들어 엔화와 유로화, 심지어 원화의 대 달러 가치는 뚜렷이 상승한 반면, 위안화는 극히 미미한 상승세만 보였다. 거꾸로 엔화나 유로화에 대한 달러화와 위안화 가치는 평행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원화는 달러화에 대한 강세나 엔화와 유로화에 대한 약세에서 위안화와 오십보백보다. 환율체제가 이질적인 중국과의 '환율전쟁' 이후에 한국에 훨씬 급속한 여파가 밀어닥칠 수 있음을 예고한다. 10여 년 동안 두 차례나 외환위기를 겪으며 고환율에 비명을 지르더니 금세 거기에 안주한 고질적 체질만 아니라면 공정한 조정으로 여겨도 무방할 것을.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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