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뭘 팔아 먹고 살까. 연수시절 미국 사회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들었던 의문이다. 자동차도 일본 유럽 등 외제차에 점령당한 상황이고, 코스코나 월마트에는 중국산이 넘쳐났다. TV나 카메라 휴대폰 등을 만드는 미국 제조업체도 별스럽게 기억나는 게 없다. 물론 보잉처럼 덩치가 큰 항공기를 만드는 회사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등 세계를 주름잡는 명품 IT기업들이 즐비하지만 미국의 엄청난 무역적자를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의 군수산업이 무역적자를 메워왔다는 지적도 있으나 실제 통계수치를 들여다보니 전혀 그렇지 못했다.
더욱이 수많은 종류의 중국산 저가 제품이 없다면 미국민들의 일상생활 자체가 굴러갈 상황이 아니다. 1980년대에는 일본의 공략에 밀려 쌍둥이적자를 내고 있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이 자리를 중국이 꿰찼다. 이후 단 한번도 적자가 아닌 상황이 없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의 지적처럼 중국이 위안화를 절상해도 중국에 팔아먹을 물건이 별로 없다.
세계가 환율전쟁에 돌입했다.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들이 중국이나 한국 등 신흥국을 상대로 노골적으로 환율 문제를 건드린다. 발끈한 중국이 맞대응하고, 브라질 등의 일부 국가는 투기자금 등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려 한다. 미국은 다시 환율조작 의심국의 상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보호무역 조짐까지 일고 있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화력을 동원한 열전(熱戰)이었다면, 1950년대 이후 냉전(冷戰)시기를 거쳐 지금은 환율전쟁(換戰)의 시대로 돌입했다. 전쟁보다는 규모나 범위가 작은 것이 난리(亂)다. 1997년 외환위기는 환란(換亂)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와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 발생한 것으로 국지적으로 난리가 난 셈이다. 우리가 겪었던 환란이 어떤 것이었던 가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난리가 이 정도라면 전쟁은 어떨까.외환위기 때 보다는 피해 범위와 규모가 매우 커질 것이다.
열전(熱戰)의 발생원인이 경제 공황이듯, 환전(換戰) 원인 역시 경제적 다툼이다. 2008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간 회복 속도에 차이가 나면서 발생한 탓이다. 상호충돌하는 전선도 선진국 대 신흥국의 구도로 재편된 것이 특징이다.
선진국은 신흥국의 환율절상을 통해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려 하고, 신흥국은 이를 거부하고 자구책을 마련하면서 충돌하는 형국이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 때도 무역적자의 원흉으로 지목한 일본의 엔고를 유도, 위기를 탈출했으나 덕분에 희생양이 된 일본은 장기불황에 빠졌다. 그랬던 미국이 이번에는 중국을 지목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과는 달리 중국의 입장은 완강해 간단치 않은 싸움이 될 듯하다.
서울에서 열리는 G20에서 의장국인 우리나라가 공교롭게도 이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위치에 섰다. '새우가 고래싸움 말리는 격'이라는 비아냥도 있으나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우리는 물론,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특히 우리처럼 수출의존도가 높고 환율변동에 취약한 국가들이 피해자가 될 공산이 높아 신흥국들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전쟁의 상대어는 평화다. 어떤 평화적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까. 대통령이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을 듯하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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