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기계체조는 지난 30여 년간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남자는 유옥렬, 여홍철, 이주형, 김대은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화려한 조명을 받았으나 여자기계체조는 국제무대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탓에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리듬체조에서도 신수지와 손연재가 기량이 급성장하며 세계 무대를 노크하는 동안 기계체조는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현재 대한체조협회에 등록된 여자 기계체조선수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통틀어도 431명에 불과할 만큼 운동 환경이 척박한 탓이다.
한국 여자기계체조의 기대주 조현주(18ㆍ학성여고)가 그간의 설움을 일거에 씻어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조현주는 18일 오전(한국시간) 네덜란드 아호이 로테르담 아레나에서 열린 제42회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예선 도마 종목에서 한국여자기계체조 사상 처음으로 개인 종목별 결선에 진출했다.
도마에서 두 번을 뛰어 평균 14.250점을 획득한 조현주는 참가 선수 218명 중 6위로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올랐다. 여자대표팀이 1979년 미국 포트워스 세계선수권대회부터 참가한 이래 개인 종목별 결선에 진출한 것은 조현주가 처음이다.
23일 밤 결선에 출전하는 조현주는 내친 김에 메달까지 도전해 볼만하다. 결선 진출자 중 3위인 14.633점을 받은 페르난데스 바르보사(브라질)에겐 불과 0.383점, 1위 알리야 무스타피나(러시아ㆍ15.283점)에도 1점 정도 밖에 뒤지지 않아 당일 컨디션에 따라 충분히 입상을 노려볼 수 있다.
한편 조현주와 박지연(16ㆍ천안여고), 박은경(19ㆍ조선대), 엄은희(17ㆍ경기체고), 문은미(16ㆍ서울체고), 서이슬(16ㆍ제천여고) 6명으로 이뤄진 대표팀도 이날 단체전 예선에서 총205.260점을 획득, 전체 34개국 중 20위에 올라 내년 일본에서 열릴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자격을 얻는 겹경사를 누렸다.
어린 나이지만 조현주의 체조 성장기는 ‘인생극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조현주는 지금도 키가 147cm에 불과해 체구만 놓고 본다면 도저히 대표팀에 뽑힐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2006년 청소년 대표에 발탁됐을 때만 해도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공중 연기가 안돼 대표팀 코칭스태프조차 고개를 내저었을 정도다.
그러나 조현주는 러시아 출신 마리나 블라센코 코치의 세심한 지도 아래 꾸준히 국제무대 경험을 쌓으며 기량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성인대표팀에 데뷔한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62위에 오른 조현주는 지난해 런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순위를 45위까지 끌어올렸고, 마침내 세 번째로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한국 체조사에 영원히 빛날 금자탑을 쌓았다.
이승택기자 ls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