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몰려오기 시작한 이래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거주하거나 조선과 인연을 맺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날 무렵 조선에 거주하던 재조(在朝) 일본인은 70만명에 이를 정도였다.
오랫동안 한국사에서도 그리고 일본사에서도 아웃사이더로 취급됐던 재조 일본인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사회사ㆍ미시사적인 조명이 각광받고, 우리사회가 식민지배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단계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확대되는 연구 영역
2000년을 전후해 근현대사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재조 일본인의 위상과 생활상에 대한 연구가 싹튼 이래 3~4년 전부터는 역사학, 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조 일본인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인 지주, 재조 일본여성의 위상, 재조 일본인 작가 혹은 조선 체험 일본인 작가들의 작품세계, 재조 일본인의 매스미디어, 재조 일본인의 귀환 사례 등 연구 스펙트럼이 확대되고 있다.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한림대 일본연구소 등 대학의 일본연구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연구활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지난해 5월 고려대, 한림대, 백석대 등의 연구자들이 결성한 ‘식민지 일본어문학ㆍ문화연구회’는 이 분야 연구 저변의 확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학회는 1년여 사이 14차례의 학술회의를 열었고 3권의 단행본을 간행했다.
일문학자인 정병호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부소장은 “글로벌리즘의 도래와 일국(一國)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재조 일본인의 생활사나 문화적 활동에 대한 조명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조 일본인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일본인과 조선인의 관계를 ‘지배자 대 피지배자’라는 이항대립적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틀을 넘는 연구 패러다임”이라며 “연구가 심화되면 식민지배의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구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문학과 조선문학이라는 제도 사이에서’(2009), ‘조선문인협회와 내지인 반도작가’(2010) 등 최근 재조 일본인 문학 관련 논문을 집중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박광현 동국대 국문과 교수는 “문학사 연구는 제도, 사람, 장소가 맞물려 진행돼야 한다”며 “조선어, 조선인의 문학이 아니라 분명한 실체가 있었던 재조 일본인 작가, 일본어문학의 연구가 진행돼야 식민지시기 우리 문학사가 충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식민권력의 본질 파악”
식민지 일본어문학ㆍ문화연구회가 기획해 최근 출간한 (문 발행)은 1908~1911년 서울에서 일본인들이 발행한 일본어 종합잡지 ‘조선’을 연구대상으로 재조 일본인의 정체성, 이들이 전개한 식민담론 등을 분석한 책이다. 문화이식론, 한국정치사상, 기독교와 배일사상 등에 관한 14편의 논문을 싣고 있다.
채숙향 백석대 관광학부 교수의 논문 ‘조선에 나타난 안중근 의거에 대한 인식’은 일제강점기 내내 본국 일본인과 동일성을 공유하면서도 한편으로 입장 차를 지닐 수밖에 없었던 재조 일본인들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채 교수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신문기사들은 안 의사에 대한 비난보다는 세계적인 대정치가로서 이토 히로부미의 업적을 강조했으며 일본 정계는 이 사건이 대한정책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반면 잡지 ‘조선’은 안중근 의사를 ‘배일(排日)의 광견(狂犬)’으로 매도하고, 안 의사 배후의 배일집단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다. 또 사건을 계기로 무단정치를 강화하고 한일병합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강경론을 펼쳤다.
최근 한국사회사학회와 서울대 일본연구소가 연 학술대회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으로 귀환한 재조 일본인의 경험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는데, 정준영 한림대 일본학중점연구소 연구원은 식민지시기 경성제대에 근무했던 일본인들의 귀환 사례를 통해 이들을 ‘식민주의 의식을 결여한 식민자’라고 정의했다. 예를 들어 이들은 귀환 후 많은 회고담을 남겼지만 거기에는 귀환 과정에서의 고생만 부각됐을 뿐 정작 식민지시기를 기억하는 대목에서는 조선인의 처지나 그들과의 관계 등의 내용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
정씨는 “피식민자로서 식민자의 의식을 탐색하는 작업은 단순히 식민권력이 억압자였다는 분석을 넘어 식민권력의 본질을 구명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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