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내걸었다. 이제까지 사회적 약자에게만 제공되던 시혜적 복지에서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전략적으로 '중도개혁'보다 조금 왼쪽에 무게중심을 둘 수는 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로 가는 길이 중도를 버리고 진보로 가는 길처럼 선전을 한다면?
민주당의 새 당헌, 착각 아닌지
거의 착각이다. 복지가 오로지 진보의 의제는 아니다. 보수도 확대된 복지혜택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다. 애초에 19세기에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의도한 것이 그것이었고, 20세기에도 이들 나라에서 진보 정당만이 복지정책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에서 중도 좌파가 집권한 기간은 보수가 집권한 기간의 반 정도이며, 프랑스에서는 반에도 못 미친다. 그래도 이 나라들은 훌륭한 복지국가이다.
물론 좌파는 우파보다 사회적 약자에게 좀 더 신경을 쓰고, 사회적 시민권을 확대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복지체제를 일정한 수준까지 건설한 나라들에서 복지는 좌파가 일방적으로 독점한 의제는 아니었다. 영국이나 미국 같은 소위 자유주의 국가들도 나름대로 복지국가이다. 다만 독일과 프랑스와 다르고, 북구 국가들과 다른 뿐이다. 복지를 내세우는 일이 무조건 왼쪽으로 가는 일, 곧 진보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당 안에서 '담대한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이 착각을 부추긴다. 안타깝게도 진보언론 일부도 이 착각을 확산시키는 데 한 몫을 한다. 이 사람들은 복지를 추진하기만 하면 진보라고 말하며, 복지혜택을 일부 확대하려는 한나라당도 그 증거라고 말한다. 복지를 확대하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왼쪽으로 간 것이라고? '자칭 진보들'의 착각이다. 아직 못해서 그렇지, 보수가 선거전략으로 복지를 확대할 틈은 꽤 크다.
모호하게 혹은 기만적으로 사용된 '보편적 복지'가 이 착각의 중심에 있다. 일반적으로 좋은 복지는 선진적인 모든 복지국가에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각자 정책과 제도가 다를 뿐이다. 물론 영국과 미국 같은 자유주의 복지국가는 사회적 약자에게 선별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잔여적' 복지체제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들이 복지국가가 아닌 건 아니다. '보편적 복지'만이 진보라고 착각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한국의 엉성한 시혜적 복지를 영국과 미국의 '잔여적' 모델과 같은 것으로 놓은 후, 그것을 '보편적 복지'와 대립시키는데, 거기서 착시가 생긴다. 한국의 복지는 복지국가의 '잔여적' 모델에도 못 미친다.
물론 북구가 보편주의 복지를 실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모델이 복지의 유일한 정답일 필요는 없다. 그 모델은 복지체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또 60~70년대에 도입된 북구 모델이 현재 한국에도 적용될 모델인지에 대해서 나는 여러 점에서 회의적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북구 모델도 좁은 의미의 진보적인 정책 덕택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북구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에 국한된 복지정책이 아니라, 넓은 중간계층에게 적용되는 복지정책을 제공했다. 물론 당시 노동자계급이 중간계층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북구는 '중간계층'의 기준에 맞는 보편주의를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복지로 간다고 중도를 버린다?
북구의 보편주의 복지는 보편적 정치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던 셈이다. 민주당이 복지정책을 차분하게 실행하는 건 좋다. 그러나 복지로 가려면 중도를 버려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다. 중간층의 지지를 얻을 정치적 실력이 없는 '자칭 진보'는 북구 복지를 실행하지도 못한다. 물론 '보편적 복지'라는 구호로 선거에서 후딱 재미를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실제로 복지를 구축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대국민 쇼가 된다면 모두에게 불행이고.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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