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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10월 18일, 1979년,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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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10월 18일, 1979년, 마산

입력
2010.10.1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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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빌리자면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나는 시인을 꿈꾸는 뜨거운 나이였어. 시월이었어. 불온한 시월이었어. 시월유신이란 유령이 떠돌고 있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시월에는 무신(無神)이게 하소서'뿐이었어. 또 기도했어, '아이들, 낙엽, 대통령, 바보, 눈물, 풀꽃 모두 모여 시를 읽게 하소서'라고.

나는 반점을 빼고 '낙엽 대통령' '대통령 바보'라고 주술처럼 중얼거렸어. 그러니까 그 날은 18일이었어. 목요일이었어. 차라투스트라를 기다린 정오가 지나갔어. 그리고 오후 2시쯤이었어. 그 시각 위대한 마산의 혁명이 점화됐어. 우리는 신마산을 지나 창동을 향해 달려 나갔어. 마산이 함께 달려 나갔어.

3·15가, 김주열이 함께 달려 나갔어. 생에 있어 가장 긴 하루였어. 위수령이 내려졌어. 휴교령이 내려졌어. 뒤쫓아 오는 군홧발 소리가 요란했어. 여기저기서 짓밟혀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어.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어. 마산이 고문, 성고문 당하는 소리, 마산이 고통으로 울부짖는 피울음소리 들었어.

무학산이 따라 울었어. 합포바다가 함께 울었어. 대학생과 시민들이 군사재판에 회부됐어. 나는 치 떨리는 분노로 '붉은 피, 피 흘리는 맨몸의 마산이어!'라고 썼지만 펜을 꺾고 말았어. 그 날로부터 8일 만에 대통령은 저격당했어. 31년이 지났어. 그런데도, 아아 그런데도.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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