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을 물로 보다 물먹는다
이젠 물도 산업이다. 그냥 필수품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재화다. 세계는 이미 물 산업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정부도 이 같은 중요성을 인식, 2020년까지 '물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물산업육성전략)을 지난 13일 발표했다. 녹색성장시대의 핵심테마로 부상하고 있는 물 산업의 세계적 현황과 우리나라의 대응전략을 짚어본다.
"19세기가 골드(금) 러시, 20세기가 블랙 골드(석유) 쟁탈전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블루 골드(수자원) 확보전의 시대가 될 것이다."
물을 더 이상 물로 봐선 안된다. 연간 시장규모만 수백조원. 각국이 앞다투어 물 관련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있고, 물의 경제적 가치를 간파해 먼저 국제시장으로 치고 나간 기업들은 이미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물 장사가 블루오션
물 산업은 이미 규모 면에서 거대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세계시장 규모는 4,828억달러로 추산되며, 세계경제 성장률(IMF는 올해 성장률을 4.8%로 전망)을 넘어서는 연평균 6.5%의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의 전문 조사기관인 글로벌 워터 인텔리전스(GWI)는 2025년의 세계 물 산업 규모를 8,650억 달러로 전망했는데, 올해보다 시장 규모가 2배로 커지게 되는 셈이다.
분야별로 보면 여전히 상하수도 관련 산업의 규모가 74%로 가장 크다. 상하수도관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선진국이나 새로 설치해야 하는 개발 도상국 모두에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예상된다. 2011년 이후 20년 동안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개국에서 지어질 상하수도 시설에만 우리 돈으로 8,300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이밖에 ▦연간 17%씩 성장하는 물 재이용 분야나 ▦이미 연간 규모가 900억 달러에 달한 먹는 샘물 시장 ▦사우디 아라비아(11억 달러)와 아랍에미리트(8억 달러) 등 중동 국가들이 대규모 투자를 벌이고 있는 해수 담수화 시장 등 물 산업은 전 분야에서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
지역별로 보면 경제성장 속도와 도시화 진행 속도가 빨라 물 소비량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아시아 대륙이 가장 잠재력이 높은 시장이다. 세계 물 소비량 중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54.9%, 95년 58.9%에서 2025년에는 62.2%까지 늘어날 전망. 특히 중국의 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민간이 참여하는 물 시장에서 중국 시장의 점유율(서비스 인구 기준)은 89년 8%에서 지난해 38%로 급증했다.
유럽계 기업이 시장 선점
이렇게 물 산업이 향후 석유산업을 능가할 차세대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현재 세계 물 시장은 기술력과 선점 효과를 앞세운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이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다. 특히 일찍부터 수자원 분야의 산업화를 이룬 프랑스 기업들이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1853년 설립된 세계 1위 물 기업 베올리아의 경우, 세계 66개국에 진출해 지난해 매출액 125억 6,000만 유로를 달성했다. 물을 팔아 1년에만 19조원 이상을 벌어들인다는 얘기. 상하이(上海)의 신개발 지역인 푸동(浦東)지구에서 상수도 공급을 맡는 등 최대 시장인 중국에도 90년대 중반부터 일찌감치 진출해 있다.
세계 2위 기업인 수에즈는 5월 충칭(重慶)에서 공업용수 계약 건을 수주하고 30년 동안 하수처리 사업을 벌이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GE(미국)나 지멘스(독일) 등 굴지의 기업도 물 산업에 뛰어든 상태다.
이에 비해 한국은 ▦건설 기술 ▦담수화 플랜트 등 일부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나 관리ㆍ운영 경험이 미숙한 탓에 해외 진출 실적이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또 최근 물 시장은 건설ㆍ공급ㆍ운영ㆍ관리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종합적 서비스(토털 솔루션) 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쪽으로 추세가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김필수 연구원은 "전반적인 서비스를 요구하는 최근 흐름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건설 등 일부 영역에서만 해외 주요 물 기업의 하청 역할을 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 물 산업, 아시아에서 가장 물 오른 싱가포르 일본의 비결은?
물 산업에 관한 한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일본이 가장 앞서 있다.
싱가포르는 서울보다 조금 넓은 면적에 460만명 남짓한 인구의 도시국가. 바다로 둘러싸인 탓에 수원지로 활용할 만한 하천이 거의 없어 식수의 절반가량을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해 쓰는 대표적인 물 부족국가다. 취수에 불리한 환경 탓에 한번 쓰고 버린 물을 재활용하거나 바닷물을 담수로 전환하는 기술은 세계적 수준. 세계보건기구(WHO)가 물 부족 국가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싱가포르와 공동 진행할 정도다.
특히 싱가포르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물 산업의 국가 전략인 '뉴 워터(New Water)'프로젝트를 2003년에 수립, 물 부족 해소 노하우를 수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물 산업 기업인 하이플럭스의 경우 2003년 자국 사업 비중이 100% 였지만 2008년엔 20% 미만이 됐다. 그 만큼 해외 사업 비중이 커졌다는 이야기.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싱가포르는'물 산업의 허브'까지 내다보고 있는데, 현재 지멘스와 제너럴일렉트릭(GE) 등 50여 개의 물 관련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해 놓고 있다.
일본도 우리보다 한 수 위다. 2008년 정부가 '물 비즈니스 국제 인프라 시스템 추진실'을 설치, 물 산업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이 해외 물 산업 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것은 관련 기술 수준이 그 만큼 뒷받침 하고 있기 때문. 일본은 물 산업 관련 부품, 재료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특히 수처리 분리막(필터) 기술과 하수 재처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2007년 기준 세계 수처리 분리막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점유율은 50%에 이를 정도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