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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표절' 작가 피에르 바야르 이메일 인터뷰/ "내 책은 허구와 이론의 중간인 '이론적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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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표절' 작가 피에르 바야르 이메일 인터뷰/ "내 책은 허구와 이론의 중간인 '이론적 픽션'"

입력
2010.10.1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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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8대학 문학 교수인 피에르 바야르(56ㆍ사진)는 독서와 창작에 관한 참신한 견해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학자다. 그의 저작들은 우리가 상식선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통념들을 도발적이리만치 무너뜨린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들을 예로 들자면, 그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에서 어떤 책을 논하는 일은 그 책을 굳이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예상 표절> 에서는 선대의 작가가 후대 작가의 작품을 베끼는 일이 가능할 뿐더러 실제로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한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셜록 홈즈가 틀렸다> 에선 추리소설의 거장 애거서 크리스티와 코난 도일의 대표작을 정교하게 분석, 전세계 독자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소설 속의 범인이 실은 진범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바야르 교수는 치밀하고 명쾌한 논리로 언뜻 억지스럽다 싶은 논지를 설득력 있게 펴 나간다. 주제의 흥미로움에 더해, 쉬운 어휘와 문학적 구성으로 이론서의 격식을 벗어나려 한 점도 그의 책이 흡인력을 갖는 이유다. 프랑스어권 전문 번역가 백선희씨의 도움을 받아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그는 내년 봄 주한 프랑스문화원의 초청으로 방한할 예정이다.

_ <셜록 홈즈가 틀렸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를 스스로 '추리비평'이라고 이름 붙였다. 낯선 용어인데.

"추리비평은 추리소설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 속 탐정들이 범인을 지목할 때 종종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걸 목표로 한다. 추리비평은 그 자체에 추리 과정을 내포하면서 마지막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편, 문학에 관한 이론적 성찰도 함께 담는다."

_ 추리비평은 모든 추리소설에 적용 가능한가.

"대부분 가능하다. 대개의 추리소설은 수사가 치밀하지 못하고 진짜 범인들은 꽤나 지능적이라서 법망을 벗어난다. 또한 이들은 살인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작가도 모르게 평온하게 살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이 그들을 만든 작가에게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율적으로 산다는 원칙 아래, 그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밝히는 것이 추리비평의 몫이다."

_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에서 당신은 언급한 책들을 정독하지 않았음을 거듭 밝히며 논의를 펼친다. 문학 교수로서 부담이 되지 않았나.

"내 모든 책은 '이론적 픽션', 그러니까 허구와 이론의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 내 책에 나오는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허구적 화자다. 인문학 서적에서 화자는 으레 저자와 동일시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예컨대 <읽지 않은 책…> 의 첫 페이지에서 화자는 자신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강의를 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실제 그렇다면 대충 훑어봐도 많은 독서에 기반했음을 알 수 있는 이 책을 어떻게 쓸 수 있겠나."

바야르 교수는 "이론적 픽션의 이점은 소설가가 작중 인물들에게 그러하듯, 저자가 자기 논의를 온전히 제 것으로 삼지 않고 독자에게 그것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론적 픽션은 그 자체가 문학 작품으로서 유동적이고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텍스트를 창출할 수 있다. 물론 내 책은 '인문학 서적은 진지하다'는 생각에 길든 많은 독자들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는 "내 책은 모두 독자에게 텍스트 앞에서 가만히 있지 말고 적극 개입해서 텍스트를 바꿔보라고 촉구하기 위해 쓰여졌다"고도 했다.

_ '예상 표절'은 예술적 혁신의 선취, 즉 앞으로 일어날 예술적 혁신을 미리 간파해 자기 작품에 반영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는 비난의 대상이긴커녕 예술가들의 지상 목표가 아닐까.

"내 책에 제시된 사례 중엔 그런 선취뿐 아니라 말 그대로 표절도 있다. 다시 말해 후대 작가들에게서 예술적 요소를 명백하게 차용하는 것이고, 그건 올바른 일이 아니다. 좀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문학과 예술의 역사를 비선형적 방식으로 파악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위대한 창작자들이 마치 미래의 예술적 주제와 형태들이 어떨지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어떤 주제나 형태가 순환적 방식으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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