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목동 KT챔버홀에선 특별한 클래식 음악회가 열렸다. 바이올린, 하프, 피아노 협연으로 울려 퍼지는 클래식 선율은 여느 음악회와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객석의 호응은 마치 인기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공연이 끝나자 연주자들로부터 사인을 받으려고 대기실로 몰려든 청중들은 이날 충남 서천군에서 올라온 외국인 주부들과 지역아동센터 아이들. 대우증권의 초청을 받아 모처럼 서울로 음악회 나들이를 나선 특별 손님들이었다.
창단 갓 1년을 넘긴 이 요즘 애정을 듬뿍 쏟고 있는 상대는 다문화가정, 특히 고국을 떠나와 가정을 꾸린 외국인 주부들이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진한 애정을 쏟게 될 줄 몰랐다. ‘120만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에, 사회의 관심이 좀 더 절실한 외국인 노동자 및 이주여성들에 보탬이 되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 점점 커졌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외국인 무료병원 5곳과 전국 10곳의 다문화지역센터의 운영 비용을 후원한 것. 하지만 그들과 스킨십이 잦아질수록 애처로운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언어 장벽이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리고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아서다. 단지 그들 세대에서 끝날 문제도 아니었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할 그들의 2세가 엄마처럼 우리 사회의 주변인으로 소외될 우려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선 주부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손맛 고민부터 해법을 찾아주기로 했다. 우리말을 잘 못해도 가족들에게 한국 음식을 요리해 줄 수 있도록, 지난 7일 대표적인 한식 메뉴 44가지의 조리법을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로 번역한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요리’책을 발간했다. 외국인 주부들을 위한 달력도 제작해서 나눠주고 있다. 7개 국어로 한국음식 요리법과 나라별 국경일을 표시해 만든 올해 달력은 1주일 만에 2만여부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어서, 내년 달력은 10만부로 늘려 찍을 계획이다.
평소 클래식음악에 접할 기회가 적은 다문화가족 및 소회계층 청소년들을 위한 클래식 공연도 앞으로 3차례 더 계획하고 있다.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교육 지원도 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 사내‘사랑의 온도계’를 통해 직원들의 기부가 활발해지면서,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방과후 공부방 지원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서울과학고를 졸업한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봉사동아리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저소득층 중학생들이 수학, 과학, 영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교육장을 용산 마포 금천 고양 구로 대전유성 등 6곳에 마련했다. 42개 방과후 공부방을 포함해 장학금 지원, 도서관 기증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하는 단체 수는 97곳으로 늘어났다.
사회봉사단이 작년 7월 출범하면서부터는 임직원들도 너나할 것 없이 나눔활동에 젖어들고 있다. 매달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직원 수는 1,200명으로 출발해 1년 만에 전체 직원의 85%가 넘는 2,700명으로 늘었다.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사랑의 연탄 나누기, 김장 담그기, 북한이탈주민 바자회 등 매달 테마를 달리한 봉사활동에도 임직원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참여하고 있다.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은 “성숙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사회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필요한 곳에 베풀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가장 필요한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는 전략 덕분에 짧은 기간임에도 나눔경영 정착에 성공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나눔경영을 본격화한 지 1년만에 올 9월 사회복지의날 기념식에서는 이웃돕기 부문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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