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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맨을 잡아라" 사립탐정들의 산업스파이 미행 현장… 동행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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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맨을 잡아라" 사립탐정들의 산업스파이 미행 현장… 동행 취재

입력
2010.10.1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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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나 기업의 의뢰를 받아 실종자를 찾아내고, 유명 상표를 도용한 소위 '짝퉁' 상품 제조현장을 잡아내는 이들을 흔히 사립탐정, 공식명칭으로는 '민간조사원'이라고 부른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조사원은 600여명. 기자는 최근 기술 유출건을 조사해달라는 A사의 의뢰를 받은 조사원들이 산업스파이를 뒤쫓는 현장을 따라가봤다.

10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의 한 고급 아파트. 짙은 회색 양복 차림의 50대 초반 남성이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산업기술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X맨이다. X맨이 오른쪽 어깨에 멘 검은색 노트북 가방 안에는 그가 15년째 LED 제조회사에 근무하면서 동료들과 땀 흘려 연구한 최신기술, 금액으로 치면 수천억원의 가치가 나갈 수도 있는 기술이 들어 있을 터. 민간조사원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박경도(41) 조사원이 100m 정도 뒤에서 대기 중인 조헌주(36) 조사원을 보면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조 조사원은 양복 윗주머니에 꼽은 볼펜형 동영상 카메라 꼭지 부분을 돌려 전원을 켰다.

미행이 시작됐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 200여m 곧게 뻗은 인도가 나왔다. X맨이 뒤를 돌아본다면 미행자를 알아차릴 수도 있는 상황. 박 조사원은 행인 뒤를 따라가다가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자 버스를 기다리는 양 멈춰 섰다. 이번에는 뒤따라 오던 조 조사원이 앞서 나가며 뒤를 쫓아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곳은 같은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 박 조사원은 "지난주 다른 팀이 조사한 결과 X맨은 일주일에 두세 번 이 건물에 있는 회사에 온다"고 했다. 그 회사는 외국회사가 투자한 회사여서 최신 국산기술의 해외 유출을 짐작할 수 있었다.

X맨은 건물 지하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이어 검은 정장을 입은 40대 후반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간단한 인사 후 X맨은 노트북을 꺼내면서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내용은 LED 설계도, 원리 등이었다. 어느새 점퍼에 모자를 쓰고 변장한 박 조사원이 테이블 옆에 서서 안경에 장착한 초소형 동영상 카메라로 기술 유출 현장을 찍었다.

대화가 끝나고 둘은 각자 길을 나섰다. 일을 마친 박 조사원은 모자를 벗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충혈된 눈이 극도의 긴장감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현장에 투입되면 언제나 피가 끓지만 오늘처럼 국내 기술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사건을 맡으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유우종 한국민간조사협회장은 "바로 수사기관에 넘기고 싶어도 사실을 조사하는 것까지가 우리 임무"라며 "소송 등 법적인 절차는 변호사들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민간조사원은 종종 불법행위로 문제가 되는 무허가 심부름센터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배우자의 불륜 현장을 덮치거나 조사 대상자의 집을 찍고 도청을 하는 등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서초법률사무소의 이명재 변호사는 "민간조사원은 법무법인의 위임을 받아 조사를 하기 때문에 불법적인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아울러 "민사사건은 몰려드는데 경찰이나 검찰은 인력이 한정돼 여력이 없고, 민원인은 사건이 지체돼 불만이 많다"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민간조사업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간조사원이 되려면 동의대, 대구대, 한세대 등의 평생교육원에 개설된 '민간조사 최고전문가 과정'에서 8주간 범죄심리학, 교통사고 보험사기 등 각종 범죄 조사기법, 미행방법 등을 이수하고 이론과 실기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유 회장은 "10% 정도는 협회에 소속돼 같이 활동하고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국내외 유수 기업에 위험 관리자로 취업해 있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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