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레이코프 지음ㆍ손대오 옮김
김영사 발행ㆍ624쪽ㆍ2만2,000원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사회복지, 세금, 교육, 환경 문제 등 여러 사안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차이는 이념이 아니라 어떤 것이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가정생활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견해, 즉 도덕관과 가정관의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로 인지언어학이 전공이다. 그는 1994년 미국 중간선거를 지켜보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서로 다른 도덕 개념과 가치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개념화하는지를 연구하는 인지과학의 방법론을 적용해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분석했다.
저자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중심에는 모두 가정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두 진영 모두 무의식적으로 국가를 가정에 비유해 정부를 부모로, 국민을 자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진영이 보는 이상적인 가정에는 차이가 있다. 보수주의는 엄한 아버지를, 진보주의는 자애로운 부모를 이상적으로 본다.
보수주의의 엄한 아버지 모델은 ‘세상이란 기본적으로 위험한 곳이며 인생이란 어려운 것’이란 시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모델에서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져 있고,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제와 극기를 통해 도덕적으로 강해져야만 한다. 악에 굴복하거나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이런 모델을 갖고 있기에 보수주의자들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비판한다. 사람들을 공공의 도움에 의존하는, 도덕적으로 나약하고 절제와 의지력이 부족한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진보주의의 자애로운 부모 모델에서는 ‘세상이란 최대한 보살핌을 받고 또한 남을 보살펴야 하는 곳’이다. 서로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으며, 다른 이들과의 감정이입을 배우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공정하게 행동하는 곳이다. 이런 모델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태하고 방종한 이들이 아니라, 사회적 이유나 건강 문제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이들이다. 정부는 자애로운 부모처럼 이들이 공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복지 프로그램 외에도 교육, 환경, 조세, 사형제도, 10대들의 임신, 마약, 동성애, 이민자 문제 등 대립하고 있는 사안들에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어떻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지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가 이렇게 가정관과 도덕관에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잘 이해하고 있지만 진보주의자들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관찰이다. 스스로를 ‘헌신적인 진보주의자’로 소개하는 저자는 “과거 다른 진보주의자들처럼 한때 보수주의를 천박하고 이기적이며 부유한 사람들의 도구일 뿐이라고 얕잡아봤으나 이 연구를 통해 보수주의자의 일관성과 지성, 현명함에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애로운 부모 모델이 아이들의 양육방법으로 더 우월하고, 현재 미국이 가진 부의 70%를 10%의 가정이 소유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부유한 가정은 더욱 부유해질 것이라는 점 등의 이유를 들면서 자신이 이 연구를 통해 더욱 진보적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책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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