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74)는 기왕에 많은 작품이 국내에 번역됐던 터라 지난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가 수상했을 때와 같은 궁금증은 덜할 듯하다. 수상 이후 바르가스 요사의 후기 작품들도 잇따라 출간될 것으로 보여 올해는 최근 어느 해보다 풍성하게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세계를 맛볼 수 있게 됐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인 (1984)을 비롯해 (1998) 등을 번역했던 새물결 출판사가 그의 2003년 작인 (김현철 옮김)를 최근 번역했다.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하는 등 문학과 정치, 두 축으로 진행된 자신의 삶처럼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세계도 크게 ‘정치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과 ‘인간의 관능성에 대한 탐구’라는 양 갈래의 궤적을 그려왔다. 는 두 명의 실존 인물을 통해 정치와 예술, 두 축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황혼기에 도달한 그의 삶과 사유의 한 결산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소설의 두 주인공은 19세기 인상파의 대표 화가 폴 고갱(1848~1903)과 그의 외할머니 플로라 트리스탄(1803~1844). 트리스탄은 고갱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사회주의자이자 여성운동가로 ‘19세기의 여자 체 게바라’로 불리는 인물. 그의 저서 (1842)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1848)에 앞서 사회주의 강령을 담은 중요한 문건으로 평가된다. 고갱이 유럽 기독교 문명의 도덕적 굴레를 벗어나 타히티라는 원시 세계에서 예술적인 관능적 유토피아를 추구한 인물이라면, 트리스탄은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이란 정치적 유토피아를 위해 억압적 현실 세계와 투쟁한 인물이다.
약 50년의 시차를 두고 두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두 세계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처자식 버리고 찾은 원시적 삶에서 자유와 성적 쾌락에 탐닉하는 고갱, 금욕과 절제 속에서 타인의 해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트리스탄의 삶은 양 극단에 있는 셈. 하지만 천국을 찾는 그들의 열정은 같은 핏줄처럼 닮았다. 그들의 열망이 치열하게 타올랐다가 꺼지는 과정을 그리는 작가 바르가스 요사의 메시지는 책 제목에서 짐작되듯, 천국이란 결국 ‘미친 지랄’이며 ‘신기루’ 라는 것이다.
하지만 책 첫머리에 놓인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폴 발레리의 말처럼 그 열정은 인간이라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런 곳은 세상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단 말이야. 우리가 사는 이 곳에서 이 세상의 불완전함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473쪽)이다. 이는 정치적 좌파에서 중도 보수주의로 선회한 바르가스 요사 자신의 회고적 성찰과도 맞닿아 있다.
이 소설의 참다운 맛은 사실 이런 유토피아에 대한 관점보다는 생시몽주의와 푸리에주의 등 초기 사회주의 운동, 인상파 운동 등이 들끓던 19세기 정치ㆍ예술의 풍경과 두 주인공의 심리에 대한 세밀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묘사에 있다. 특히 고갱이 걸작을 탄생시키는 과정이나 빈센트 반 고흐와의 관계 등을 그리는 작가의 서술을 읽을 때는 고갱의 내밀한 속내에 빨려 드는 듯하다. 고갱과 고흐의 팬이라면, 또 마르크스가 공상적 사회주의라 불렀던 초기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꼭 챙겨야 할 작품이다.
(1988) (1978) (1982) 등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 문학동네도 그의 2000년 작인 를 이 달 말 출간할 예정이다. 연말께는 (2006)도 출간한다. 는 30여년 간 도미니카 공화국을 통치한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암살이라는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정치 스릴러 소설로, 역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버무리며 독재의 잔학상을 다뤄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은 플로베르의 고전 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화려한 삶을 꿈꾸는 가난한 여인의 러브 스토리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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