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헤린 지음ㆍ이순호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672쪽ㆍ3만8,000원
2002년 어느 날 런던 킹스칼리지의 주디스 헤린 교수 연구실을 지나던 건설인부 2명이 ‘역사 교수’란 명패를 보고는 호기심에 문을 두드렸다. 헤린은 “비잔티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얼떨결에 10분간의 ‘특강’을 했는데, 인부들로부터 “우리를 위해 책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동로마제국 1,000여년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역저 은 그렇게 탄생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언론에 ‘비잔티움처럼 얽히고설킨 조세 규정’이란 표현이 상용될 정도로 서구사회에 널리 퍼진 비잔티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그 말대로 그는 18세기 철학자 몽테스키외와 볼테르, 그리고 를 쓴 에드워드 기번 등 선학들을 가차없이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들은 “가당치도 않은 주장, 우스꽝스런 이론”으로 비잔티움의 역사를 왜곡한 이들이다.
저자는 문외한들을 배려해 딱딱한 연대기적 서술 대신 28개의 주제를 모자이크처럼 아기자기하게 엮어 비잔티움의 역사를 풀어낸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330년 비잔티움(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새 수도로 정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했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비잔티움은 바다가 도시 한가운데에 들어오는 심해 항을 가진 천혜의 요새였을 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요충지. 그 덕에 기독교와 로마의 전통, 고대 그리스의 유산을 결합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됐고, 700년 넘게 이슬람 국가들과 힘을 겨루면서도 그들과 공존하고 문화적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비잔티움은 1204년 기독교 형제국을 짓밟은 4차 십자군의 공격 이후 쇠락해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했다.
저자는 문화와 예술,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잔티움이 남긴 족적과 이슬람의 팽창을 막아낸 성과 등을 들어 “없이 유럽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비잔티움이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뒤죽박죽의 제국으로 매도된 것은 그것을 계승한 현대 국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저자는 비방의 주 원인이 됐던 환관의 역할을 새롭게 해석한다. 거세를 참을 수 없는 굴욕으로 여긴 로마에서는 환관이 혐오의 대상일 뿐이었지만, 비잔티움에서 그들은 황족의 수호자이자 예술의 후원자, 그리고 군대의 지휘관으로 활약했다. 또 제국의 한 축을 떠받친 여성의 역할에도 주목하는데, 최고의 역사가 안나 콤네나, 아들 콘스타티누스 6세를 장님으로 만들고 스스로 여제가 된 이레네를 비롯한 여제들의 대담한 활약상을 박진감 넘치게 펼쳐놓는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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