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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김동호 위원장'처럼

입력
2010.10.1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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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그를 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영화인이건 아니건,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반대다. 만나 본 것은 고사하고, 부산영화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누구에게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끝났다. 수많은 스타들이 부산을 찾았고,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최고 스타는 배우도, 감독도 아닌 바로 김동호(73) 집행위원장이었다. 은퇴하는 그를 위해 한 작곡가는 노래를 지었고, 배우들은 그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고, 감독들은 오마주를 표했고, 영화제 관계자들은 아쉬운 이별의 눈물을 훔쳤다.

물론 그는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15년 전,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 영화제를 시작했고, 아시아 최고로 만들었다. 김동호가 없었어도 지금처럼 세계가 한국영화를 주목하고, 임권택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홍상수가 칸과 베니스에서 이렇게 빨리 잇따라 수상하는 쾌거를 맛볼 수 있었을까. 누구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는 못할 것이다.

청렴, 성실, 열정 그리고 사랑

부산영화제라고 처음부터 순수와 권위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국제'라는 수식어를 달았지만, 여느 지자체의 축제와 마찬가지로 홍보, 업적 과시의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없애버리고 부산영화제를 영화잔치로 온전하게 키워나간 것은 정치적 수완도, 능란한 로비도 아니었다. 김 위원장의 청렴과 순수, 근면과 성실, 영화와 영화인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었다.

공무원 시절의 '김동호'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말단에서 시작해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거쳐 문화부 차관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것, 그리고 어느 관료가 전해준'전설'뿐이다. 매년 가을이면 국립공원이나 문화시설에 심어놓은 나무에도 과일이 열린다. 많으면 팔아서 국고에 보태기도 하지만 아주 적은 경우, 이따금 맛 보라고 문화부로 보내곤 한단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것조차 돌려보낸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동호 위원장과 유진룡 전 차관이다.

부산영화제를 맡고 나서 그는 출품된 한국영화와 부산영화제 홍보, 초청 인사와 작품을 섭외하기 위해 매년 칸에 갔다. 10여 년 전, 한 외국기자가 "새벽마다 어두운 해변에서 조깅하는 이상한 한국인(노인)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궁금해 확인해보니 김동호 위원장이었다. 쑥스럽게 웃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칸이라고 뭐가 달라. 어디서든 평소 생활리듬을 지켜야 덜 피곤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지."

아무 약속 없이 김 위원장을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영화인들의 상가(喪家)이다. 축하의 자리에는 빠져도 영화인들의 아픔이나 슬픔은 반드시 찾아 위로한다. 대상에 높낮이나 길고 짧음이 없다. 자기 존재를 과시하지도 않는다. 조용히 조문하고, 주위 사람 하나하나에게 형식적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담은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요즘, 이 위원 칼럼 잘 읽고 있습니다"하는 식으로.

몇 년 전부터는 끊었지만, 그는 늘 소주만 마셨으며, 아무리 먼 거리라도 비행기는 이코노미석을 고집했다. 영화제를 위한 돈이라면 한 푼이라도 아끼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사는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한 잔이기에 사람들이 그 맛을, 그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얘기는 구구하게 늘어놓지 않겠다. 문화부의 '전설'하나로 그의 청렴과 검소는 충분히 설명되니까.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퇴장

무엇보다 그가 '스타'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 영화제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에게 영화는 어떤 이념도, 수단도 아니었다. 영화제 역시 정치가 아니었다. 오로지 영화와 영화인, 영화팬들을 위한 축제였다. 그 자리에는 어떤 권력도, 돈도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심지어 대선 후보자들조차 개막식 무대에 오를 수 없게 했다. 스스로 올곧음과 헌신을 통해 영화제의 정신과 권위를 세웠다.

"그 시간들이 일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다는 김동호 위원장."영화와 부산영화제에 대한 나의 사랑은 영원하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와 역사는 젊고 능력 있고 경험이 풍부한 새로운 일꾼이 맡아서 해야 한다"면서 손을 흔들고는 즐거운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오면서 그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전설'을 만들었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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