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바둑계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지난 8일 전라북도 부안군 예술문화회관에서 열린 제4기 여류기성전 결승전에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선수인 김윤영(21ㆍ초단)이 박지연(19ㆍ2단)을 물리치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 여자기전에서 20세 안팎의 초단과 2단이 결승전을 벌인 것도 처음이고 루이나이웨이 박지은 조혜연 등 이른바 ‘빅3’가 아닌 기사가 우승한 것 또한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 여자바둑계는 1990년대 초반까지 윤영선과 이영신이 석권하다가 1999년 루이나이웨이가 한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동안 ‘루이 1인 천하’가 계속됐다. 이후 박지은과 조혜연이 루이의 아성에 끈질기게 도전하면서 지난 10년간 ‘트로이카 체제’가 유지돼 왔는데 이번 여류기성전을 계기로 드디어 여자바둑계에도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김윤영은 지난해에도 이 대회 결승에 진출했으나 루이나이웨이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는데 올해는 8강전에서 루이를 만나 묵은 빚을 갚고 단숨에 우승까지 내달았다. 여자바둑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돼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김윤영은 “이 기세를 몰아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한국이 금메달을 따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윤영은 이번 우승으로 2단으로 승단했다.
김윤영뿐 아니라 여류기성전 준우승자 박지연도 최근 활약이 대단하다. 박지연은 올해 농심신라면배 대표선발전에서 4연승을 해 최종 결승까지 올라갔다가 아쉽게 물러났고 삼성화재배서는 예선부터 무려 6승1패를 기록하면서 당당히 16강까지 진출했다. 특히 32강전에서 중국의 신예강호 퉈자시를 꺾은 건 실로 대단한 사건이었다. 박지연은 여류기성전에서도 박지은 조혜연을 잇달아 물리치는 등 최근 3개월 동안 14승5패를 기록해 랭킹이 연초 120위권에서 10월에는 109위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김윤영은 89년생으로 2007년 입단 했고 박지연은 91년생으로 2006년 입단했다. 이들이 최근 이같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데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한 여자상비군 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사상 최초로 바둑이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됨에 따라 작년 말부터 여자상비군이 구성돼 맹훈련을 한 결과 국가대표선수 뿐 아니라 함께 훈련했던 여자 선수들이 모두 엄청나게 기량이 향상됐다는 것. 특히 김윤영 박지연 이슬아(19) 김미리(19) 등 나이 어린 선수들이 훈련의 효과를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 여자바둑계가 ‘루이-박-조 트로이카 시대’를 마감하고 ‘상비군 세대’로 대권이 넘어갈 날이 그리 머지 않은 것 같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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