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여야 지도자들의 개헌에 관한 발언이 잇따르는 바람에, 청와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진의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개헌 논의 자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국가 최고법인 헌법도 사회 변화와 동떨어져 맞지 않게 된 부분이 있다면 손질하는 게 당연하고, 그 전단계인 개헌논의야 상시화해도 된다. 개헌이 정치적 야심 충족의 방편이던 시절도 아득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원 포인트 개헌' 논의가 이미 정치적 의혹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무해한 개헌 논의도 때와 조화하지 못하면 무용한 논의로 끝나기 십상이고, 나아가 결과적으로 사회적 에너지 낭비나 손실을 부를 수 있다. 국민적 공감의 토대가 없거나 그때그때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오해를 부를 개연성이 있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현재의 개헌 논의가 탐탁지 않은 이유다.
우선 개헌 논의의 바탕인 국민적 관심이 식어서 마땅한 사회적 동력이 없는 상태다. 이 대통령 집권 초기만 해도 정부ㆍ여당이 개헌에 관심을 보인 데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적극적으로 개헌 의욕을 표명해 국민적 관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개헌논의는 이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런 결과는 정치권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개헌 논의만 하면 으레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추는 행태가 재연된 것도 그랬지만, '바람직한 권력구조'도 바뀌었다. 지난 정권의 개헌 논의 공감대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축으로 형성됐다. 당시 우리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의 조기 권력누수를 막고, 책임정치를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18대 국회 전반기의 개헌논의 과정에서 방향이 '분권형 대통령제'로 크게 물길을 틀었고, 이번에는 지나친 권력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이런 변화는 개헌이 시급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확인시킨 셈이다.
여야 차기 주자들이 한결같이 개헌에 소극적인 반면 친이계로 기운 여당 지도부가 적극적인 것을 비롯해, 여야 내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리되지 않은 의견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논의의 진솔성과 진정성을 의심스럽게 한다.
개헌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절차와 과정도 역사에 남는다. 1987년과 같은 변혁적 상황도 아닌 이 때에 시간에 쫓기듯 후닥닥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굳이 개헌논의를 하겠다면 국회에 상설기구부터 만들고, 오래 뜸을 들여 국민이 공감할 개헌안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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