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와일드 등 지음ㆍ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발행ㆍ40쪽ㆍ1만원
책장을 덮으면 절로 코끝이 찡해지는 그림책이다. 원제는 ‘Harry & Hopper’(해리와 호퍼). 빨간머리 소년 해리와 달마시안 강아지 호퍼의 진한 우정과 결별을 그린 이 책은 ‘슬프다’고 말하지 않아 더 슬프다.
표지에서 호퍼를 안고 볼을 비비고 있는 해리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이다. 둘의 절대적인 믿음을 백마디 말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최고의 단짝 친구였던 둘은 그러나 호퍼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면서, 영원한 이별을 맞는다.
호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해리. 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텔레비전 소리를 더욱 크게 키워본다. 호퍼와 같이 자던 제 침대 대신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한다. 이런 그에게 호퍼가 돌아오고, 둘은 밝은 달빛 아래서 신나게 논다. 해리는 매일 밤 호퍼를 만나지만 호퍼는 점차 기력을 잃는다. 마지막 밤. 해리는 차갑고 희미해진 호퍼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잘 가, 호퍼” 하고 인사한다. 비로소 해리는 가슴 속에서 호퍼를 떠나 보낸 것이다.
채의 맨 뒷장은 해리의 집을 중심으로 조망한다. 마치 호퍼가 하늘에서 해리를 바라보는 장면 같다. 새끼손톱만하게 보이는 해리는 마당에 호퍼의 무덤을 만들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글에서 단 한번도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슬픔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한 글은 행간에 많은 말을 숨기고 있어 문학성이 짙다. 호퍼가 사고를 당하거나, 해리가 봉분을 쌓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아 이야기는 더욱 서정적으로 흘러간다.
영국의 권위있는 그림책 상인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올해 수상작이다. 심사위원들은 “거친 연필선과 억제된 듯 부드러운 색상을 통해 죽음과 슬픔을 극복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평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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