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환율을 둘러싼 기 싸움이 한창이다. 초강대국 미국에서 시작된 이번 금융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여파가 컸다. 각국은 긴장감 속에 일치단결하여 위기극복을 위해 협조했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빠르게 회복되었으며 분위기도 좋았다. 적어도 금년 6월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예상 외로 다시 비틀거리면서 상황은 변하고 있다.
금융위기 초기 각국은 모두 돈을 풀었다. 돈을 풀면 경제가 살아나지만 반면에 물가가 오르고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자산가격도 들썩인다. 그런데 이런 이론이 선진국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로지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 초반이고 일본은 마이너스이다. 실업률도 고공 행진 중이다.
그러자 미국은 그 원인을 환율에서 찾고 있다. 교역국들이 부당하게 자국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바람에 미국의 수출이 타격을 받고 그로 인해 경기가 되살아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당한 교역국’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 미국은 위안화 절상을 계속 압박했지만 중국은 굴복하지 않았다. 급기야 미국이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무역보복을 가능케 하는 법률을 만드는 데까지 왔다. 중국은 계속 버티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꺼내든 카드가 추가적인 돈 풀기이다. 높은 실업률과 낮은 물가상승률은 추가적인 돈 풀기의 명분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과연 돈이 부족한 게 미국 경제에 대한 올바른 진단의 결과인가?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그 동안 풀었던 돈(자산)의 대부분은 연준으로 되돌아와(초과지준) 있다. 또한 장기금리도 사상 최저수준이다. 지금 미국 경제에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런데도 돈을 푸는 연준의 숨은 의도는 달러화를 넘치도록 공급해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데 있다. 실제 연준이 추가 돈 풀기를 시사한 9월초 이래 유로화 및 엔화는 미 달러화에 대해 각각 9.4% 및 2.7% 절상되었다. 하지만 주 타깃인 위안화 환율은 미국이 의도한 정도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고래싸움에 등이 터지는 것은 신흥시장국들이다. 미국의 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데다 달러화 가치하락이 불가피해지자 투자자금이 신흥개도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외국인 자금이 넘치면서 주가, 채권가격, 원화가치의 트리플 강세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신흥시장국들은 높은 물가상승률과 자산가격 거품으로 고민이 많다. 이코노미스트지에 의하면 대부분 신흥시장국의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브라질, 인도, 말레이시아 등이 정책금리를 올린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그러나 환율이 문제이다. 가뜩이나 통화가치 절상으로 몸살을 앓는 판국에 금리인상은 불 난 데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국의 환율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위안화가 충분히 절상되어준다면 자국통화의 절상 여지도 그만큼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을 둘러싼 기 싸움은 단지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끝은 어떻게 될까? 지금의 정책결정자들은 대공황시대를 포함한 그 어느 경제위기 발생시기의 정책담당자들보다 훨씬 스마트하다. 공멸을 불러올 정책선택을 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은 서로 타협하는 선에서 휴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 플라자합의 때와 같이 공식적이고 가시적인 휴전은 아닐 확률이 크다.
중국이 위안화를 지금보다 다소 빠른 속도로 절상하고 미국이 이를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오는 11월11~12일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우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세계경제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모멘텀으로서 ‘서울 G20'이 길이 남을 수 있다.
김대수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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