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뒀던 사람들이 한치의 분열도 없이 일사분란 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69일만에 구조된 칠레 광부 33명의 개별 인터뷰가 나오면서 주먹다짐까지 했던 갈등, 기름 섞인 물을 마셨던 고통, 식인(食人)에 대한 공포까지 떠돌았던 700m 지하생활의 실상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4일 구출 광부 중 한명인 기계공 리차드 비야로엘(27)씨 등의 인터뷰를 보도하며 “(지금까지 알려진) 공식 버전이 다소 미화된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비야로엘은 “(구조대가 발견하기 전) 17일간은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는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몇 명은 절망한 나머지 잠자리에 누워 나오지 않았다. 하루 반 스푼의 참치로 버티며 몸무게가 12kg 줄었다. “몸이 스스로를 먹어 치우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기자가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은 같은 것은 거론되지 않았느냐는 묻자 그는 잠시 망설인 뒤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하지만 구조의 손길이 미친 후에 한차례 농담의 소재가 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두 번째 낙석사고가 발생했던 때를 가장 무서운 순간으로 꼽았다.
비상식량 상황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열악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오직 참치 통조림 10개가 전부였다. 소다 병의 마개로 참치를 덜어 손톱만큼씩 나눠 먹었다. 우유는 썩어서 먹을 수 없었다. 물은 기계 기름이 섞인 오수(汚水)를 마셔야 했다.
역할분담을 위해 광부들이 3개 조로 나누어진 것도 실상은 주먹다짐을 하며 싸워서 세 그룹으로 쪼개졌다고 한다. 한 광부가 지상의 동료에게 전한 편지에서 나온 말이다. 또 비야로엘을 비롯한 5명은 지상에서 내려 보낸 비디오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는데, 비야로엘의 아버지는 “아들이 카메라 앞에서 뽑내는 동료들에 화가나서 동참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스페인 신문 ‘엘 파이스’에 따르면, 이들 5명은 별도의 하도급 계약 일꾼들로 따로 터널을 뚫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도 했다. 나중에 선임자 한 명이 전체 광부 그룹에 동참할 것을 지시해 화합할 수 있었다.
광부들은 구조 손길이 도착한 직후 기적 같은 기쁨을 함께 나누며 이전의 갈등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피의 맹세’을 했다고 한다. 싸운 이유도 함구하고 있다. 또 절망 속에 반목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외면하지 않았다.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는 “17명 이상을 다수결 기준으로 정하고, 모든 것을 투표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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