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가 여행지도를 바꿔놓는다. 11월1일부터 경부고속철 2단계 구간이 개통된다. 서울-부산도 2시간40분에서 2시간18분으로 더 가까워지지만, 기존 KTX가 서지 않았던 경주와 울산이 서울에서 2시간대에 연결된다. 지금 경주는 새마을호로 서울에서 4시간40분 거리다. KTX는 이를 2시간2분으로 줄였다. 새마을호로 5시간20분 걸렸던 울산도 2시간11분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이젠 당일치기로 보문단지에서 온천욕을 하거나, 장생포에서 고래 한 접시와 바다 바람을 쐬고 올라올 수 있게 된 것이다.
KTX 경주역과 울산역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 단석산 자락의 경주역에서 시내까지는 20분 정도 차를 타야 하고, 언양에 붙어있는 울산역에서도 20~30분 달려야 울산 시내에 들어선다. 경주역이 경주만 품을 수 있는데 비해 울산역은 양산 부산 울산을 함께 담아내는 관광의 허브가 될 전망이다. 울산역에서 통도사, 해운대가 20~30분 거리다. 역 바로 뒷산인 신불산은 그 유명한 영남알프스의 중심축으로 지금 산 정상은 거대한 억새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가까워진 경주와 울산의 볼거리 먹을거리를 한 상 차렸다. KTX가 전해준 차고 넘치는 푸짐한 선물이다.
■ 경주
경주는 시가지 중심부터 찬란한 역사를 뽐낸다. 시내 한가운데의 첨성대를 스치고 계림을 지나면 반월성이다. 당시 신라의 왕궁이 있던 곳이다. 왕궁이 있던 터는 흔적만 남았고, 지금은 용처럼 뒤틀린 굵은 노송이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반월성 소나무 숲은 경주 시민들이 도시락을 준비해 나들이 나오는 곳이다. 그 한적한 여유가 부럽다. 노송 옆 아름드리 벚나무들에도 가을이 물들었다.
분황사 옆 너른 들판은 신라에서 가장 큰 사찰 황룡사가 있던 자리다. 선덕여왕은 이 황룡사에 거대한 9층 목탑을 세웠다. 총 64개의 주춧돌이 박혀있는 탑의 바닥 면적만도 450㎡에 달하고 높이는 80m, 지금의 아파트 30층 높이다. 지금 남았으면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됐을 이 탑은 애석하게도 몽골침입 때 불타고 말았다.
경주 남산은 신라 서라벌의 진산이다. 남산에 깃든 나정에서 신라의 역사가 시작됐고, 남산의 그늘 드리운 포석정에서 신라는 서글픈 종말을 맞았다. 신라의 처음과 끝이 남산과 함께 했다. 남산의 웬만한 바위는 불상 아니면 탑이다. 경주 남산엔 118개의 불상과 96기의 석탑, 147개의 절터가 남아있다. 살아있는 신라의 노천박물관이다.
경주 감포의 대왕암은 바다의 용이 되어서라도 신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의 전설이 어린 곳이다. 대왕암 일출 포인트는 봉길리 해수욕장이다. 대왕암 위로 햇덩이가 솟구친다.
봉길리 해수욕장 인근 대본초교 맞은편에 이견대가 있다. 문무왕의 대를 이은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대왕암에서 5분 거리 내륙 쪽으로 감은사지가 있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세우기 시작했고 아들인 신문왕 때 완성됐다. 감은사란 이름은 문무왕의 위업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신문왕이 붙였다.
경주 양동마을은 올 여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설창산 자락에 안긴 마을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산자락이 말 물(勿)자 모양으로 갈라져 내려오는데 그 골 사이에 집들이 차곡차곡 들어섰다. 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성씨가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이다. 땅이 평평치 않아 집들은 언덕의 위 아래로 들어섰다.
경주
감포 이견대 밑에 횟집타운이 형성돼 있다. 이 중 감포복어대게횟집을 추천한다. 자연산 횟감을 취급하는 곳이다. 다양한 해초를 곁들여 먹는 회의 맛이 색다르다. (054)775-7810
경주는 도내에서 가장 많은 소를 키우는 곳이다. 경주 사람들이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맛'이라고 추천하는 곳은 영천시와 이웃하고 있는 서면 아화리의 서면식육식당(054-751-1173)이다. 이곳은 암소만 고집한다. 수소에서 느끼지 못하는 암소만의 부드러움이 이 집의 장점이다.
경주시 천북면에는 화산불고기 단지가 형성돼 있다. 이중 '운수대통가든'은 지역민들이 단골로 많이 찾는 곳이다. 고기 질도 좋지만 함께 나오는 밥이 맛있다. 가마솥에서 방금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과 주인이 직접 담근 깊은 장맛의 된장찌개가 일품이다. (054)762-5353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 옆 너른마당에 운치 있는 한정식 집이 있다. 황남동의 도솔마을이다. 닭볶음탕, 갈치조림, 호박잎쌈, 비지찌개, 콩잎무침 등 시골스러움이 한 상 가득하다. (054)748-9232
보문단지 북군동에는 순두부촌이 형성돼 있다. 경주의 지인들은 이 중 흥부네를 추천한다. 칼칼하게 끓여낸 순두부찌개가 개운하다. 펄펄 끓는 순두부 찌개에 날계란을 톡 터뜨려 넣는 맛이 이색적이다. (054)748-5688
■ 울산
울산은 고래의 땅이다. 한국은 해방 직후 울산 장생포를 중심으로 고래를 잡기 시작해, 전세계적으로 포경이 금지된 1986년까지 계속 잡았다. 예전엔 하루 평균 5~6마리 정도가 장생포항에 들어와 해체됐다고 한다. 당시 돼지고기보다 싼 가격의 고래고기는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의 고마운 단백질 보충 수단이었다. 포경이 금지된 지 30년이 흘렀지만 울산에는 아직 고래에 얽힌 지역정서가 짙게 남아있다.
울산의 고래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장생포의 고래박물관이다. 2005년 문을 연 이곳은 1층 어린이체험관, 2층 포경역사관, 3층 귀신고래관과 고래해체장 복원관 등으로 꾸며져 있다. 박물관 옆에는 장꽃분, 고아롱, 고다롱이란 이름의 돌고래 3마리를 만날 수 있는 생태체험관이 있다.
울산의 고래 구경은 산에서도 할 수 있다.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상류에 깎아지른 절벽이 있다. 그곳에 고래가 그려진 세계적인 암각화가 있다.
계곡 옆 호젓한 산책길을 걸으면 거북이 누워있는 모습의 반구대를 만나고, 좀더 걸어 오르면 반구대암각화가 강 저편으로 보인다. 깎아지른 벼랑의 바위들 중 유독 짙은 빛을 띠는 아래쪽 평면이 반구대암각화가 그려진 곳이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선사인들의 그림을 관찰할 수 있다.
암각화엔 고래와 함께 다양한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이 반구대암각화를 세계적인 유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58마리의 고래 중 작살을 맞고 있는 고래 그림이다. 멕시코 러시아 북유럽 등지에도 고래 암각화가 발견됐지만 포경을 그려낸 건 전세계에서 이것 하나뿐이다. 곧 반구대암각화는 인류 최초의 고래 잡는 그림이다.
반구대암각화에서 산책로를 따라 1, 2시간 걸으면 또 다른 암각화인 국보 제 147호 천진리각석을 만난다. 천전리각석엔 마름모, 물결, 동심원 등 기하학적 문양이 바위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울산 시내에서 부산으로 가다 남창역에 이르기 전에 외고산옹기마을을 만난다. 국내 최대 옹기 생산지다. 한 때 400여 명이 옹기를 빚었지만 지금은 10가구 정도가 남아 옹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선 지금 옹기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24일까지 진행되는 엑스포는 전통 발효음식 용기로서 옹기의 우수성과 옹기의 역사성 문화적 가치를 짚어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품이 차려졌다.
울산 시내를 가로지르는 태화강은 한강, 낙동강만큼이나 이름이 알려진 강이다. 80, 90년대 찌든 오염, 죽음의 강이란 오명을 안고 살았던 강이다. 하지만 이후 강을 살리자는 온 시민의 노력으로 태화강은 기적적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젠 연어 은어가 돌아오는 1, 2급수의 깨끗한 강으로 변신했다. 강변엔 십리대숲이 조성돼 있다. 일제 때 강의 범람을 막고자 조성된 꽤 긴 시간이 농축된 숲이다.
● 울산
울산역 인근의 언양은 불고기로 유명한 곳이다. 언양에만 40곳의 불고기 전문 식당이 있다. 이 중 25년 전통의 기왓집을 추천한다. 참숯 석쇠에 구워낸 잘 양념된 한우 암소불고기를 언양미나리와 된장소스의 아삭이고추를 곁들여 함께 싸먹는다. 참숯의 향과 미나리의 향이 절묘하게 더해져 입 안을 황홀하게 한다. (052)264-4884
울산 시민들이 시내에서 자주 찾는 집은 4대째 운영하고 있는 비빔밥전문점 함양집이다. 80년을 이어온 손맛과 정성을 맛볼 수 있다.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겨온 비빔밥은 혀에 부드럽게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남구 신정3동에 있다. (052)275-6947
고래고기는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르다. 보통 고래고기의 맛은 12가지라고 한다. 육질은 생선회처럼 부드럽지만 맛은 쇠고기와 비슷하다. 울산의 별미 중 단연 으뜸인 고래고기를 맛보고 싶다면 장생포에 있는 원조할매집을 권한다. 모둠을 시키면 가슴살, 꼬리, 육회, 수육, 내장, 껍질 등 다양한 고래고기가 한 접시 가득 담겨 나온다. 4인이 먹을 한 접시가 10만원이다. (052-261-7313)
경주ㆍ울산=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경주 오시면 천년마중 택시 찾아보세요"
"KTX 타고 와서 천년마중 택시로 경주 관광하세요."
KTX개통을 오래도록 기다려온 이들이 있다. 경주의 택시기사들이다. 경주의 택시기사 30여 명은 신라문화원에서 5월부터 개설한 경주 문화관광 소양교육을 마쳤다. 생업을 포기하고 10일 이상 머리 싸매고 달려들어 배운 교육이다. 친절 교육은 물론 경주 곳곳의 문화재에 대한 전문가급의 지식과 싸고 푸짐한 지역 맛집정보, 사진촬영 기법, 지역 역사와 옛 이야기에 대한 풍부한 상식들을 쌓았다.
신라문화원은 이 과정을 수료한 택시기사들에게 천년마중이란 마크를 달도록 했고 차별화한 유니폼으로 브랜드화 했다. 천년마중 택시기사들은 경주의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된다. 택시 안에는 경주관광지도와 안내용 팜플렛, 옛 경주사진과 경주를 기억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진 등이 비치된다. 택시 대여비는 하루 10만~15만원이다. 신라문화원 (054)774-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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