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이 세상 하직할 영이별 시간이라고 /값없는 시절과 헤어짐은 아까울 것 없건만 /밝은 앞날 보려는 미련 달랠 길 없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가나’
14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통일사회장으로 엄수된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영결식에서 고인의 유작시 ‘이별’이 낭독되자 장내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죽음을 예감하고 그토록 바랐던 북한의 민주화와 동포를 보지 못함을 애달파하는 절절함이 고인을 떠나 보내는 상주 김숙향(68)씨와 장례위원회 관계자, 명예 장례위원장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등 200여 조문객들의 눈물샘을 크게 자극한 듯 했다. 장례위원장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이어진 조사에서 “선생님이 들고 계시던 북한 민주화의 깃발이 평양에 힘차게 꽂히는 그날 저희들은 비로소 선생님을 보내드리고자 한다”며 애통해했다. 황망한 표정으로 줄곧 시선을 깔고 있던 수양딸 김숙향(68)씨는 박 전 국회의장의 조사와 조명철 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의 추도사에 연신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황 전 비서와 24시간을 함께 했던 경호요원들은 영결식 후 태극기로 뒤덮인 오동나무 관을 운구하며 마지막 길을 호위했고 인민군 출신 탈북자인 북한인민해방전선 회원 20여명은 전투복 차림으로 운구차 양쪽에 도열, 거수경례를 올렸다.
운구행렬이 대전 유성구 계룡산 옥려봉 아래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도착한 때는 이날 오후 3시. 장례위원들은 위패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앞세워 관을 운구한 뒤 안장식을 거행했다. 고인이 탈북 후 친하게 지냈던 황인성 전 총리와 주재황 전 대법관도 이날 남향의 양지바른 이곳에 안장돼 장례위원 사이에 “예사롭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
하관과 관에 흙을 뿌리는 허토식이 진행되면서 유족과 장례위원들은 눈물로써 고인과 작별했다. 상주인 김숙향씨는 “어른의 위업을 계승하는 일로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겠다”며 안장식을 함께한 200여 조문객에게 사의를 표했다. 함께 탈북했지만 2002년 미국방문 문제로 의견충돌을 빚은 후 고인과 갈등해온 김덕홍 전 탈북자 동지회 회장은 조화만 보내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묘역에는 ‘제26호 국가사회공헌자 황장엽의 묘’라고 적힌 목비가 세워졌으며 고인의 활동, 저서 등이 기록된 지석은 유족과 합의 후 마련될 계획이다.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탈북인사로는 1983년 2월25일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해 공군 교수 등을 지낸 고 이웅평 공군대령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충원 관계자는 “고인의 안장을 계기로 묘역을 근접 촬영할 수 있는 폐쇄회로TV와 경비인력을 보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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