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해안도시 칸은 매년 5월이면 때아닌 열기에 휩싸인다. 올해 63회를 맞은 칸국제영화제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세계 3대 영화제로 함께 꼽히던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의 위상이 추락한 반면 칸영화제의 입지는 더욱 굳어지고 있다. 세계 영화계를 움직이는 큰 축으로 평가 받으며 해가 갈수록 문화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칸의 번화가인 크로와제 거리를 가득 채운 명품들보다 더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축제가 된 칸영화제의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리모(50)를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한 호텔에서 만났다. 2001년부터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칸영화제의 얼굴 역할을 하며 영화제 상영작 선정을 주관하고 있다. 질 자콥 조직위원장이 영화제 막후 실력자로 알려져 있지만 프리모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그는 “항상 규칙적이고 바르게 생활하는데 부산에 오면 언제나 (술에) 무너지고 만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영화가 지닌 에너지와 부산영화제와의 우정 때문에 부산에 오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해를 제외하고 2001년부터 올해까지 계속 부산을 찾았다. 그는 “부산 방문이 나의 첫 방한이었다. 영화와 부산 덕분에 한국을 알게 됐다”며 미소지었다.
프리모는 2004년 한국영화 ‘올드보이’(감독 박찬욱)와 2005년 ‘극장전’(감독 홍상수)의 경쟁부문 진출 등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리모는 “지난 10년 동안 멕시코 루마니아 팔레스타인 등 여러 나라의 숨겨진 영화를 발견한 것에 만족한다. 그 중 한국영화를 소개한 게 가장 잘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한국영화는 우수성에 비해 오래도록 세계에서 소외됐다. 칸영화제가 한국영화를 도와줬다기보다 한국영화 덕에 칸이 더 풍요로워졌다 생각한다. 한국영화의 미래는 더 밝을 것이다.”
프리모는 “부산영화제를 기점으로 2~3개월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음 영화제를 위해 영화를 보고 영화인을 만난다”고 말했다. “파리에서 편안히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감독은 해당 나라에서 만났을 때 가장 생동감이 넘친다”며 긴 여행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세계를 주유하며 1년에 보는 영화는 700~800편. 그는 “1,700편 가량이 칸영화제에 출품되는데 사전에 걸러진 영화만 본다”고도 말했다.
세계 최초의 영화제인 베니스영화제 등을 멀리 따돌리고 일등 영화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프리모는 “아마 우리들의 영화에 대한 취향 때문인 듯하다. 좋은 영화를 선정하면 더 많은 좋은 영화들이 오기 마련”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칸영화제를 우리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것이라 생각하며 많은 준비를 하는 것도 비결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칸영화제의 독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는 듯 “다들 ‘칸! 칸!’하지만 베를린 토론토 부산영화제도 큰 영향력을 지녔다. 칸영화제가 너무 거대한 괴물 같은 느낌을 줄까 경계한다”고 밝혔다.
프리모는 “칸영화제의 가장 큰 역할은 일년에 한번 영화라는 것 자체를 전세계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굉장히 약하지만 어떤 점에선 강하다. 칸영화제는 없어질 수도 있는 나라의 영화를 세상에 소개할 수도 있다. 이 세상의 재능 있는 감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것도 영화제의 중요 역할이다.”
부산=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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