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맨 얼굴의 가을 아침을 만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맨 얼굴의 가을 아침을 만나다

입력
2010.10.14 12:06
0 0

편하게 잤다. 잠에서 깨고서야 집이 아닌 것을 알았다. 내 잠자리에서도 자다가 눈이 떠지는데, 꿈도 없이 잤다. 눈 감았다 뜨는 사이 후드득 후드득 소리 내며 내리던 가을비는 말끔히 그쳤다. 창 밖으로 맑고 푸른 새벽이 찾아와 내 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빗속의 문학행사가 끝나고 취하고 젖어서 이곳으로 찾아올 때는 이미 하늘도 땅도 깜깜해져버려 한 점 불빛만 보였다. 잠이 든 학생들을 헤아려보니 한 명이 빈다. 한 학생을 깨워 물어보니 승용차 안에서 잔다고 한다. 코를 골 것 같아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스스로 나갔다고 한다. 피식 웃음이 난다.

외손녀가 상을 받는다고 행사장에 오신 스승과 악양 막걸리를 꽤 많이 마셨다. 취기가 도도했으니 코는 내가 더 심하게 골았을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니 자연이 무량으로 빚어내는 새벽 공기에 가슴 속까지 상쾌해진다. 날씨 또한 청명하여 앞산인 구제봉이 손을 내밀면 잡힐 듯 가깝다. 골골이 피어난 안개가 구름을 만든다.

그 구름들이 구제봉 허리쯤에 비단처럼 걸려 있다. 벼들이 황금빛으로 익어 평화로운 무딤이들판. 길게 흘러 섬진강을 찾아가는 부지런한 개울. 오랜만에 제 색깔 제 향기로 맞이한,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의 가을 아침 앞에 황홀하다. 한 몇 년 이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입석리란다. 서서히 동쪽이 붉어지고 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