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일 만에 햇빛을 본 칠레 광원 33명은 전 세계를 감동시킨 영웅들이다. 건조하고 황량한 아타카마 사막,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구리광산의 지하 700m 지옥에서 두 달 넘게 사투를 벌인 끝에 살아 돌아온 그들은 모두가 장하고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다. 비좁은 캡슐에서 한 명씩 밖으로 나올 때 그들은 힘겨운 축구경기를 끝내고 라커에 들렀다 나온 사람들 같기도 하고, 암흑의 통로를 거쳐 신생의 마당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긴박감보다는 환희와 성취감이 돋보였다.
우리나라였다면 어찌됐을까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마침내 살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지상과의 교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지상에 알리기까지 17일 동안이 그들에게는 죽음의 기간이었고, 그 이후는 희망을 키워가는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임기와 편지 화상카메라 아이팟을 통해 세상과 교신하고, 자신들을 주시하는 사람들을 이런 기기를 통해 살펴보면서 상황과 처지를 객관화하며 격리상태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하감옥'에 유폐된 기간에도 광원조직 특유의 규율과 질서에 맞게 '작은 사회'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면서 체계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절망적인 극한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 종교의 힘과 남미 사람들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그들이 자국의 대표적 시인들의 시를 낭송하며 서로 용기를 북돋운 점이다. 남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여ㆍ1889~1957)과 역시 노벨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작품이다.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네루다의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칠레의 광원들에게 친밀도가 더 높은 시인은 네루다이다.
네루다는 자서전에서 "내가 받은 가장 큰 상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원이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갱도에서 나오더니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라는 말을 했다. 상원의원이 되어 탄광에 찾아갔을 때 광원들은 "우리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세요. 어딜 가든 우리를 잊지 마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네루다는 시를 써야 하는 보다 절박한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그만한 매몰사고가 났다면 광원들은 시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누구의 시를 암송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이 있었더라면 그의 시를 읊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다. 긍정의 힘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의 자살과 노벨문학상의 좌절, 최근의 이 두 가지 사건에 칠레 광원들의 생환이 대조돼 보인다.
한국인들 같으면 그들처럼 오래 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한국인들 같으면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으로 매몰광원들을 더 빨리 구조했을지 모르지만, 광원들의 참을성은 그들만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좋은 모범으로 남을 수 있기를
그러나 이 극적인 구조가 드라마의 끝일까. 이 사건은 광산 근로자들의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광원들 자신이 트라우마(충격적 경험에 인한 정신적 외상)를 극복하고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다. 두 번째로 구조된 마리오 세풀베다는 "제발 우리를 광대처럼 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최고령 광원 마리오 고메스는 지상으로 나온 직후 "나는 변했다. 이제 다른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 일로 칠레가 달라진 것처럼 그들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됐다. 아무도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33인이 좋은 모범으로, 영웅으로 남을 수 있느냐는 게 문제다. 구조된 것만으로는 해피 엔딩의 완성이 아닌 것 같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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