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태광그룹 편법 증여 의혹 사건은 재벌그룹의 전형적인 편법 증여 방식을 그대로 닮았다. 비상장 자회사 주식의 헐값 발행 및 지분 인수, 계열사 자산의 활용 등 편법증여를 위한 익히 알려진 방식들이 동원됐다.
수사 초점은 물론, 이호진 그룹 회장이 외아들 현준군에게 계열사 지분을 몰아주는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다. 핵심 연결고리는 비상장 회사인 한국도서보급과 티시스(옛 태광시스템즈), 티알엠(옛 태광리얼코) 3곳으로, 모두 이 회장이 51%, 현준군이 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06년 4월 초등학교 6학년이던 현준군은 티시스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 49%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이 때 현준군이 넘겨받은 주식가격은 주당 1만8,955원인데, 당시 관련법에 따라 평가하면 주당 20만원이 넘었다는 것이 의혹을 제기하는 쪽의 주장이다. 헐값 발행을 통한 편법 증여라는 주장의 근거다. 이보다 두 달 전에도 현준군은 티알엠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49%를 확보했다.
문제는 당시 비상장 기업인 한국도서보급과의 자금 거래다. 이 회장은 같은 해 1월 이 회사에서 11억원을, 티시스는 같은 해 4월 18억원을 빌렸다. 그리고 티시스는 유ㆍ무상증자를 거쳐 그룹 내 두 번째로 큰 기업인 대한화섬의 주식 1만9,000여주를 사들였다. 계열사 간 자금거래를 통해 증자가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현준군에 대한 편법 증여가 일어났을 것으로 볼 만한 정황이다. 특히, 지난달 13일 한국도서보급은 모기업인 태광산업으로부터 대한화섬의 지분 16.74%를 넘겨받아 대한화섬의 최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현행 상속ㆍ증여세법에 규정된 경영권 프리미엄(매각대금의 30%)은 따로 받지 않았다. 받을 수도 있었던 45억원 가량을 챙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 대목이다.
2008년 이 회장 가족기업인 동림관광개발이 강원 춘천시에 짓고 있던 골프장 회원권을 태광산업과 계열사들이 792억원어치나 사들인 부분도 검찰의 수사대상이 될 전망이다. 태광 계열사의 회원권 매입 평균가격은 22억원이었는데, 이는 당시 다른 유명 골프장의 시세(10억원)보다 2배 이상 비싼 데다, 골프장이 완공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계열사들이 대주주 일가에게 불법적으로 웃돈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태광산업을 모태로 성장한 태광그룹은 재계 40위로, 흥국화재와 흥국생명 등 7개 금융계열사, 티브로드한빛방송을 비롯한 24개 방송사 등 5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케이블방송사 큐릭스를 약 4,000억원에 인수해 이 분야 업계 1위가 됐다. 고 이임룡 회장이 1954년 태광산업을 설립해 국내 최대 섬유업체로 성장했으며, 96년 이 회장이 사망하자 셋째 아들인 이호진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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