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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북한에 갇힌 진보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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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북한에 갇힌 진보의 가치

입력
2010.10.1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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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그런 코미디도 없다. 1980년대 운동권, 특히 NL(민족해방)계열은 북한체제를 거의 절대선으로 떠받들었다. 김일성ㆍ김정일은 '위수동(위대한 수령동지)' '친지동(친애하는 지도자동지)'으로 불렸고, 그들 '탄신일'에는 경축대자보가 나붙었다. 파쇼 타도를 목표했던 PD(민중민주주의)계열과 달리, 미국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타도와 반봉건을 외쳤던 NL에게 북한의 '반미자주' 구호는 딱 떨어지는 모델이었다. 주체사상에의 경도는 필연적이었다.

당시 독재체제에 짓눌려 있던 국민대중의 관심은 대통령직선으로 상징되는 민주정치 회복이었다. 넥타이바람으로 거리에 나선 대부분의 시민들은 알지 못했다. 시위 지도부 상당수가 북한체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던 사실을. 나아가 민주화운동도 대중의 역량을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중간단계에 불과했음을. 이미 김일성체제에 대한 충성심 크기로 운동가로서의 진정성이 평가되던 상황이었다.

1980년대 운동권의 어두운 유산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이들이 정계ㆍ학계ㆍ문화계ㆍ시민사회 등으로 대거 진출했다. 나름 그 세대의 엘리트들이었던 그들은 민주화투쟁의 영웅적 이미지를 얻어 급속히 사회적 발언권과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 10년 전 386, 그리고 지금 486세대에 상당수 포함돼 있는 이들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꼬였다. 우리 사회의 숱한 갈등이 끝내 합리적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끝없이 사회적 앙금만 누적시키는 근본이유는 다름 아니다. 이 반지성적인 종북의 유산이 민주화운동과 분리돼 정리되지 않은 채 사회저변에서 사이비 진보문화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체제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입장이 진보성향임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라는 건 기막힌 난센스다.

사회적 논쟁이 자주 이념 논쟁화하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보수ㆍ진보간 논쟁이란 경제적으로는 재원의 분배문제, 즉 시장의 역할과 공공적 개입을 논하는 것이고, 정치사회적으로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가치를 다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책적 사안마다 이념적 논쟁을 벌이고 양쪽의 가중치를 따지는 것은 당연하고도 민주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 인권, 생명, 환경 등 진보가 주창하는 가치와 북한체제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주체사상이란 것도 고전적 사회주의이론에 과도한 북한식 민족주의가 결합된 형태다. 민족주의 또한 보수의 이념은 될 수 있을지언정 원칙적으로 진보진영이 내세울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진보는 보편적 가치의 확대를 지향한다. 한마디로 북한문제가 개입되는 순간, 이념적 논거가 불분명해지면서 정상적 논의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북한 3대 세습을 놓고 벌어진 최근의 논쟁은 우리사회가 이념적으로 얼마나 혼란스럽고 위선적으로 엉켜 있는가를 재확인시켜 준 사례다. 북한에 대한 진보진영 일부의 모순적 태도는 케케묵은 80년대식 인식 틀에 그들이 여전히 갇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곤란하면 내재적 접근법 따위로 명백한 실상을 비껴가는 건 진보의 가치를 스스로 폄하하는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다. 그런 논리라면 어떤 국내문제도 비판할 수 없다. 가장 진보적인 좌파 학자였으면서도 구 소련의 폭압적 실상을 분연히 비판하고 나섰던 사르트르의 정직성과 용기를 상기해볼 일이다.

북한족쇄 벗고 본연가치 회복을

그렇지 않아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인권과 정당한 삶의 권리가 도처에서 침해되고, 환경과 생명이 위협 받는 상황이다. 국내적으로도 끊임없이 시민적 자유의 축소 논란이 빚어지고 부패, 빈부격차, 기회의 불공정 문제 등이 산적해 있다. 이 모두가 진보적 가치의 발현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진보진영이 북한 족쇄에서 벗어나 보편적 가치와 시각을 회복하지 않는 한 그들의 목소리는 대중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렇게 해서 보수논리만 일방통행 식으로 횡행하게 된다면 그건 국가 차원에서도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이번 기회에 제발 정신들 좀 차리기 바란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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