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간의 예술입니다. 의상은 시나리오 안의 이미지를 특정 시간 속 배우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일본 출신의 영화 의상감독 와다 에미(和田惠美ㆍ73)가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피터 그리너웨이, 장이머우(張藝謀) 감독 등 세계의 명장들과 작업한 와다는 현존 세계 최고의 의상감독으로 꼽힌다. 1986년 구로사와 감독의 ‘란’으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의상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했으며 1992년 TV드라마 ‘오이디푸스 렉스’로 에미상 의상상을 받기도 했다. 장이머우의 ‘영웅’과 한국영화 ‘중천’의 의상을 담당하기도 한 그는 신진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부산영화제 경쟁부문 뉴커런츠의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가장 의상이 인상적인 영화로 프랑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장 콕토의 ‘오르페우스’를 꼽았다. “흑백에다 저예산 영화지만 의상들이 아주 적절하게 쓰였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탈리아 명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들도 의상이 가지고 있는 힘을 발휘한다”고 평가했다. “그런 영화를 보면 나도 힘을 받고 의욕이 생겨난다”고도 말했다.
최고 의상감독이 꼽는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누구일까. 와다는 이마에 손을 대고 한참 생각하더니 “‘백발마녀전’의 장궈룽(張國榮)이 정말 멋있었다”고 말했다. “그리너웨이의 ‘프로스페로의 서재’에 나오는 존 길굿은 촬영 당시 86세였는데도 너무 아름답다며 무거운 의상을 기꺼이 입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검우강호’와 ‘중천’을 함께한 정우성을 “멋진 작업을 했던 배우”라고 기억했다.
한국 전통 복식의 특징을 묻자 그는 “한국 옷은 움직이기 참 편안하다”고 평가했다. “액션이 아주 중요했던 ‘영웅’을 만들 때 배우들이 춤추듯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국의상을 참조해 옷을 만들었다”고도 말했다. “15년 전엔 부산 범어사를 찾았다가 승복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 일본영화 ‘니쿠’에 반영했다”고도 밝혔다.
50여 년 동안 의상감독으로 활동하며 참여한 영화는 불과 20편. 그는 “새로운 것이 작품 선택의 최우선 고려 사항이다. 그래서 일본 감독과도 불과 8편 작업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옷을 다루는 이답게 패션에 대한 철학도 명확했다. 그는 “패션은 질감”이라고 했다. “요즘 사진은 디지털화해서 많이 얄팍해 보입니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삶의 질감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입니다.”
부산=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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