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14명째 배출했다. 우리보다 기초과학에 투자한 시기가 100년은 앞섰다는 게 과학계 안팎의 시각이다. 국내 한 과학자는 “우리나라가 외세에 흔들리던 1800년대 말 유럽 학술지에는 이미 일본인이 단독으로 발표한 연구논문도 심심찮게 있었다”고 귀띔했다.
일본보다 역사는 짧지만 최근 들어 몇몇 분야에선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과학계에서 노벨상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연구분야들을 소개한다.
중성미자와 액시온에 기대
올해 노벨물리학상이 돌아간 신소재 그래핀 연구는 현재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휘어지는 투명 필름을 그래핀으로 처음 만들어낸 게 바로 국내 연구진(홍병희 성균관대 교수)이다. 그래핀 내부에선 전자가 질량이 없는 것처럼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번 수상자들과 같은 시기에 처음 밝힌 것도 한국인 김필립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다.
그러나 노벨상을 한번 받은 연구분야에는 한동안 수상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쉽게도 그래핀 분야에서 한국인 수상자 배출을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입자물리 분야에도 뛰어난 업적들이 눈에 띈다. 태초에 생겨 빛처럼 빠른 속도로 우주 어디에나 돌아다니는 중성미자 연구는 한국이 선도그룹이다. 중성미자 분야는 1988년과 1995년, 2002년 이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냈지만 최근 한국과 일본 미국 공동연구팀이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는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히면서 또 한번 수상 물망에 올랐다. 이 연구팀에 참여한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국내외 학계에서 이름이 오르내린다.
1987년 ‘액시온’이라는 가상입자를 제안해 자연에 존재하는 4가지 기본 힘 중 하나인 강한 핵력을 명쾌하게 설명해낸 김진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도 유력하다. 액시온의 존재가 실험으로 확인되면 김 교수의 수상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거란 예측이다.
미시세계의 미세물질 연구 유력
나노(1nm=10억분의 1m)기술로 신소재를 만드는 연구는 우리 과학자들이 막강 저력을 과시한다. 구멍이 많이 뚫린 수부터 수십nm 크기의 다공성 나노물질은 각종 화학반응을 촉진시키고 전자나 기계제품의 소재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유 룡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와 김기문 포스텍 화학과 교수가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화학자다.
한국이 앞선 분야로 전기전자나 반도체를 빼놓을 수 없다. 1998년 탄소나노튜브를 여러 다발 묶으면 반도체의 특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임지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와, 분자 하나로 정보를 처리하는 단(單)분자 트랜지스터를 세계 최초로 만든 박홍근 미국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가 유력한 한국인 첫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노벨과학상 물망에 오르는 연구자들은 과학기술논문색인(SCI)의 논문 피인용 횟수가 매우 높다. SCI는 미국의 한 학술정보회사의 우수 과학학술지 데이터베이스. SCI에 등재된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과학자들은 연구에 다른 과학자의 논문을 참고하거나 활용했을 경우 반드시 명시(인용)하게 돼 있다. 인용이 많이 될수록 연구의 기본 토대가 되고 다른 학자들에게서 널리 인정 받는 논문이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들 논문의 평균 피인용 횟수는 물리 분야가 5,500여회, 화학 분야가 4,800여회다. 수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한국인 과학자들 가운데는 이미 SCI 피인용 횟수가 5,000회에 육박한 이들이 많다.
노벨상의 산실, 의학물리
물리학과 의학이 만난 의료영상 분야는 노벨상의 보고(寶庫)다. X선은 1901년 첫 노벨물리학상을 거머쥐었고, 컴퓨터단층촬영(CT) 기술은 미국과 영국 학자들에게 197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안겼다. 2003년엔 물리학상과 생리의학상 모두 자기공명영상(MRI) 장치가 탄생시켰다. 이어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의 수상도 예측된다. 후보로 점쳐지는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은 PET 연구의 권위자다.
노벨생리의학상 한국인 수상자 후보로는 특히 외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자주 거론된다. 다국적제약회사 머크의 피터 김(김성배) 연구개발총책임자와 데니스 최(최원규) 연구소부사장은 각각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AIDS) 바이러스가 인체로 들어오는 메커니즘과 뇌졸중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임상에서 에이즈와 뇌졸중의 치료법이 상용화하면 두 재미 과학자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학계는 내다본다.
아직 국내 기반이 약하다고 평가되는 구조생물학 분야에도 꾸준히 노벨상 후보로 설왕설래되는 연구자가 있다. 김성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대 화학과 교수다. 그는 1970년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생체물질(tRNA)의 3차원 구조를 처음 밝혀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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