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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 69일만에 기적의 생환/ "칠레 광부, 신과 악마 사이, 결국 신의 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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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 69일만에 기적의 생환/ "칠레 광부, 신과 악마 사이, 결국 신의 손 잡았다"

입력
2010.10.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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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담배 연기가 잠시 '희망'을 가렸다. 당초 12일 오후 8시(한국시간 13일 오전 8시ㆍ이하 현지시간)로 예정됐던 구조 개시 시간이 오후 10시로 미뤄지더니 오후 11시가 넘도록 구조 캡슐은 내려가지 않았다. 매몰 광부의 가족들이 머물던 인근 '희망캠프'에서는 담배를 꺼내는 손길이 부쩍 잦아졌다. 갱도붕괴 사고 후 죽은 줄만 알았던 17일, 그들이 컴컴한 지하 622m에서 '살아서' 땅 위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안 뒤로 다시 52일. 몇 시간 더 기다린다고 문제될 건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의 속은 타 들어갔다.

오후 11시 20분, 광산 구조 전문가인 마누엘 곤살레스를 실은 캡슐이 지하를 향해 출발했고, 16분 뒤 매몰 광부들이 보내오는 영상을 통해 캡슐이 무사히 도착하는 장면이 지상에서 목격됐다. 첫 구조 대상자인 광부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를 실은 캡슐이 출발한 지 16분 후인 13일 0시 11분 캡슐 '피닉스(불사조)'가 마침내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69일간 갇혀 있던 희망도 함께 올라왔다. 아발로스는 곧장 울먹이는 아들 바이론(7)을 힘껏 껴안았다. 광부 아빠를 존경하고, 아빠와 축구하는 걸 가장 좋아하던 아들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아들과 축구장으로 달려갈 수 있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이 순간 구조 작업을 생중계하던 미 CNN방송 화면 하단에는 '구조 광부(Miners Rescued) 1'이라는 굵은 글씨가 선명히 박혔다. 구조 광부의 수를 전하는 방송 자막은 약 1시간 간격을 두고 2→3→4→5로 바뀌어 갔고, 세계의 기쁨도 함께 커졌다.

아발로스를 비롯해 두 번째로 구출된 마리오 세풀베다(40) 등은 구조 직후 놀라울 만큼 침착함과 여유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특히 세풀베다는 땅에 발을 딛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며 귀환을 자축한 데 이어 주위를 에워싼 구조대원들과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게 손수 가져 온 돌멩이들을 건네며 "지하 감옥에서 기념품으로 가져왔다"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줄곧 신과 악마 사이에서 싸워야 했다"며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린 뒤 "나는 결국 신의 손을 잡았다. 신이 우리를 이곳에서 꺼내 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광부로 일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9번째로 나온 최고령자 마리오 고메즈(63)는 구조 직후 칠레 국기를 꼭 쥔 채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으로 주위를 숙연케 했다.

구조 첫 날인 12일 밤부터 이튿날까지 칠레 전역은 감격에 겨워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인근 코피아포 시내의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1만 명 가량의 시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밤을 지샜다. 칠레 전역 교회에서는 첫 광부가 구조된 순간 일제히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사람씩 구출될 때마다 칠레 전역엔 마치 거대한 자명종이 울리듯 환호성이 퍼져 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산이 된 이 지역은 앞으로 광부들의 성지가 될 전망이다. 피녜라 대통령은 첫 광부 아발로스가 구출된 직후 "희망캠프라는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이름이었다"며 "이곳에 담긴 정신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기념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관심을 모은 이번 구조 작전을 칠레인 모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칠레 정부의 노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구조 캡슐 피닉스의 외장은 빨강, 파랑, 흰색으로 3등분돼 칠해졌는데, 이는 칠레 국기를 구성하는 색깔이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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