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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사 라이스 전 美 국무장관 '특별하면서 평범한 사람들…' 회고록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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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사 라이스 전 美 국무장관 '특별하면서 평범한 사람들…' 회고록 출간

입력
2010.10.1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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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입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사 라이스(55)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12일(현지 시각) 을 펴냈다.

라이스는 흑백차별이 극심했던 1954년 남부 앨라배마 버밍햄에서 평범한 교육자였던 중산층 부모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흑인운동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추앙했지만, “킹 목사와 함께 거리로 나서지는 않았다”고 라이스는 회고했다.

“행진을 하지 않더라도 흑인운동을 도울 방법은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거리로 나서기 위해 수업을 빼먹은 학생들을 눈감아 줬습니다. 평생을 공화당원으로 살면서도 과격 흑인민권운동단체인 ‘블랙 팬서’의 단원들과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고, 소외된 젊은이를 위해 삶을 바쳤습니다.”

어머니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데 헌신했다. 라이스가 빼어난 피아노 실력을 갖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콘돌리사’라는 이름도 이탈리아 음악 용어인 ‘달콤하게’라는 뜻의 ‘con dolcezza’에서 따왔다. 국제정치를 전공하기 전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라이스는 국무장관 시절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와 협연하기도 했다. 7월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소울의 여왕’으로 불리는 아레사 프랭클린과 함께 어머니가 수십 년 전 돈을 빌려 사준 피아노로 자선 듀엣 공연을 했다. 라이스는 “피아노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으며, 올림픽 아이스 스케이팅 선수를 꿈꾸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정치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학생회장 선거에도 나가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선출직에는 전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많은 기업과 자선단체의 이사로도 일하고 있다는 그는 여러 대학에서 총장직 제안이 들어오고 있으나 스탠퍼드대 교수로 남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중간선거와 관련해서는 “캘리포니아 상원의원과 주지사에 출마한 공화당의 칼리 피오리나와 멕 휘트먼 후보를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피아노 연주와 골프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행정부에 있을 때 5년 간 골프채를 놓아 핸디캡이 18로 내려갔다”는 그는 “최소 1주일 3번 정도 타이거 우즈가 대학시절 연습했던 스탠퍼드대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한다”고 말했다.

독신으로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한때 미국프로풋볼(NFL) 선수들을 흠모한 적이 있었다. 결혼을 생각할 정도의 남자를 찾지 못했을 뿐”이라며 성적인 문제와 관련해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부인했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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