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새로 임명된 지난 8일 저녁 광화문 인근 음식점. 김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주요 간부 10여명이 장관 취임 축하를 겸한 식사 모임을 가졌다. 이날 만찬 참석자는 대부분 김 장관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김성환 라인이 대거 참석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외교 소식통은 "요즘 외교부 간부들이 자정 노력을 하기 보다는 새 장관에게 줄대기를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유명환 전 장관을 비롯한 외교관 자녀 특채 파문으로 외교부가 '공공의 적'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외교부 간부들은 아직도 '그들만의 리그'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 전 장관이 특채 파문으로 퇴진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외교부 내에선 아직까지 학연과 재외공관 근무 경험 등에 따른 특정 인맥이 그대로 존재한다. 때문에 외교부는 '이너서클'(핵심권력집단)에 의해 움직인다는 말도 있다.
외교부는 기본적으로 외무고시 출신들이 이끌어간다. 출신 대학으로 보자면 대다수 고위직 외교관들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인데 그 중에서도 상당수는 서울대 출신이다. 그래서 외교부를 '서울대 제2캠퍼스'라고 비아냥대는 얘기도 있다. 서울대 출신이 많다 보니 오히려 경기고, 서울고 등 출신 고교가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주미대사관과 주일대사관 근무 경력으로 묶이는 경우도 많아 '워싱턴 스쿨' '재팬 스쿨'이란 말도 생겨났다.
김 신임 장관도 이번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워싱턴 스쿨에 대해 아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그렇다"며 실체를 인정한 바 있다. 실제 외교부내에선 경기고-서울대 출신의 김 장관이 임명되자마자 특정 인맥이 부각될 것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과거에도 외교부는 장관과 인연을 가진 특정 인맥들이 핵심 보직을 차지했다.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행정학과)를 졸업한 유 전 장관 재임 당시를 봐도 이런 경향을 잘 알 수 있다. 1급 이상 외교부 간부 10여명 가운데 서울고 또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인사는 신각수 1차관을 비롯해 3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외교부가 그들만의 인맥을 형성하고 서로 챙겨주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외무고시 출신 집중도가 높은데다 외국 근무가 잦다 보니 같은 공관에서 근무한 선후배끼리 뭉치는 경향이 짙다.
또 일부 고위 외교관의 자녀들이 특채 제도를 통해 '외교관 패밀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북미국이나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해 '엘리트'를 자임하는 선후배들끼리 챙겨주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북미국이나 주요 강국 주재 대사관 근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교부에 특채돼 본부에서 일하는 외교관 자녀 20명 가운데 5명이 북미국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국 직원 26명 중 이들의 비중이 19%에 달한다. 재외공관에 근무 중인 6명의 고위직 자녀들도 대부분 미국, 중국, 일본 공관에 배치됐다.
외교부 인사들은 부처 내부뿐 아니라 부처 바깥에서도 '친정 식구 챙기기'에 바쁘다.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모두 외교부 출신들로 채워져 있어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외 주요 정보를 책임지는 국가정보원 김숙 제1차장은 외교부 출신이다. 또 후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도 천영우 제2차관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외교부 내에선 외무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들 간에 보이지 않은 벽이 존재한다. 외교부 1급 이상 간부가 모두 외시 출신인 점만 봐도 그렇다. 현재 외교부 5급 이상 외무공무원 1,459명 중 외시 출신은 61.82%인 902명에 이른다. 때문에 외교부 안팎에서는 "신임 장관이 과감하게 인사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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