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아직 죽지 않았다. 10ㆍ3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대표가 승리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다. 전당대회에 앞서 그의 승리는 비교적 높은 확률로 점쳐지고 있었다. 이유는 극히 간단했다. 우선 현장에 함몰되지 않은 구경꾼들에게는 손 대표의 승리만이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비쳤다. 그리고 이런 구경꾼들의 합리적 추론이 어떤 형태로든 여론조사에 참여한 당원이나 전당대회 투표에 참여한 대의원들의 의사에 영향을 미쳐 이른바 '전략적 선택'을 도울 것으로 기대됐다.
놓친 600만표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손 대표에게 뚜렷한 표차로 고배를 안겼던 정동영 최고위원의 조직동원 능력이 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는 현장의 전언도 잇따랐다. 정 최고위원의 의지가 작용했는지, 노력에도 불구한 한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흐름만은 개표 결과로 충분히 확인됐다.
손 대표의 승리 이후 민주당을 보는 국민의 시각이 적잖이 바뀌었다. 그의 승리를 점치고 기대한 구경꾼들은 물론이고 전략적 선택을 행사한 당원ㆍ대의원에게 자기의사와 행동의 정당성을 심어주는 데 이보다 나은 게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손 대표는 순식간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 뒤이은 제2의 대통령 예비후보로 떠올랐고, 민주당 지지율 회복세도 뚜렷하다. 민주당의 존재가 흐릿했던 주된 이유가 적절한 예비 대권주자가 없어 수권 가능성을 점칠 수 없었기 때문임을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고무적 분위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손 대표의 승리는 절대득표율이 21.37%에 그치고, 상대 격차가 2% 포인트도 되지 않는 불안한 우위에 의존했다. 1인 2표제의 투표방식으로 보아 적어도 득표율이 40%는 넘어야 안정적 세력 기반이라고 할 만하다. 민주당의 '전략적 선택'이 아직 본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손 대표의 자발적 노력이 얼마나 긴요한지를 일깨운다. 대선 도전을 유일한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는 손 대표의 당면 과제는 이런 현재의 실상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우선 손 대표는 이번에 일부 실현된 '전략적 선택'에 기대를 거는 대신 스스로의 노력에 치중해야 한다. 멀찌감치 대선후보 경선을 시야에 넣을 때와 실제로 경선이 벌어질 때의 투표 행태는 다르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87년 13대 대통령 선거다. 당시 민정당 후보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이 손잡고, 어떤 형태로든 순서를 정해 출마하는 것이었다. 삼척동자의 눈에도 뻔한 선택이었지만 끝내 두 진영 모두 '내가 먼저'를 고집했다.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의 득표율이 단일화가 성공했을 때도 그대로일 수야 없었겠지만, 적어도 50% 가까운 득표는 기대할 만했다.
또한 "잃어버린 600만 표를 되찾겠다"는 다짐에서 드러나는 외연 확장 의지보다는 내실을 다지려는 노력을 앞세워야 한다. 그의 정치적 성장배경은 지난 대선에서 참패한 정동영 최고위원과는 크게 다르다. 그런 차이는 외연 확장에서는 정치적 강점이지만, 내실 측면에서는 치명적 약점이다. 더욱이 내실이 없어서는 애초에 자신의 강점을 보여줄 기회조차 잡을 수 없음을 이미 3년 전에 톡톡히 경험한 바 있다.
집토끼 챙기는 게 급선무
그런데도 자신의 강점을 부각하는 데 치중하는 듯한 모습은 쉬운 길을 가려는 일종의 태만으로 비친다. 일단 제1야당 후보가 되면 외연 확장은 어느 정도까지 저절로 이뤄질 수 있지만, '굴러온 돌'이 내실을 다지는 데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으로 갈라진 전통적 지지기반을 통합하고, 주요 야권 지도자들과 포괄적 연대를 이룰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손 대표의 정치력이 거기에 이를 수 있다면 다음 대선은 흥미진진한 승부가 펼쳐질 것이다. 구경꾼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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