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 자녀'라는 말 오히려 한국 사람과 구분짓는 낙인 같아요
아줌마지만 여느 아줌마와 조금 다른 결혼이주여성들. 그들 스스로가 택한 새로운 인생이지만 한국 아줌마로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밖에서 차별받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고, 한국말이 서툰 게 자신 탓이 아닌지 죄책감에도 빠져야 한다. 명절 때 친정에 온 시누이가 손님 대접을 받는 모습에는 속이 상한다. 한국 생활 12년차로 12세과 9세 아들을 둔 리 영아이(李英愛ㆍ38ㆍ중국 출신), 유치원생인 7세 사내아이의 엄마인 수시 위르야니(35ㆍ인도네시아 출신), 3살배기 딸을 가진 짠 티짱(25ㆍ베트남 출신)씨를 만나 한국인이면서 또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속내를 들어 봤다.
이해하기 힘든 한국 문화
리= "한국 남자들 정말 술 좋아한다. 중국 사람들도 많이 마시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너무 늦게까지 마신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 문제다. 직장 생활을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수시= "인도네시아에는 술 문화가 거의 없다. 80%가 이슬람교인 데다 다른 사람도 대부분 종교가 있어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게 처음엔 참 특이했다."
짠=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닌데 다른 친구들 얘기 들으면 저녁 늦게까지 회식하고, 그것도 2, 3차로 나눠서 오래 간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마시는 줄 모르겠다."
리= "제사 문화가 독특했다. 중국에서는 가족들이 다 모여 지내는 경우가 거의 없고, 3년 지나면 제사를 모시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가족들이 다 모여서 제사 지내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평소 다들 바쁜데 제사 때 모두 모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문화 같다."
짠= "명절 때 절 하는 게 너무 이상했다. 베트남에서는 제사 때 죽은 사람에게 절 하는데 한국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한다."
수시= "친가와 외가를 구분하는 것은 좋지 않더라. 너무 남자 위주의 사회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 또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딸만 너무 위하는 것 같아 섭섭하다. 예컨대 결혼한 딸이 친정에 오면 자기 집인데도 손님 대접을 받는다. 시아버지는 딸이 왔다고 이것저것 해 주라고 며느리를 시킨다. 속이 상할 때도 있다."
짠= "남편만 위하는 것 같은 분위기도 있다. 아이가 밤새 울어서 잠을 못 잔 건 며느리인데 며느리에겐 고생했다는 말을 안 하고, '아비가 잠을 못 자서 힘들 텐데 출근해서 일을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렇게 며느리를 배려 안 할 때면 섭섭하다. 남편부터 챙기는 한국 문화에 대해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들이 불만을 토로한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 아이 문제
수시=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바지에 오줌을 눈 게 가슴 아팠다. 내가 한국말이 서툴러 인도네시아어를 쓰다 보니 아이가 교사에게 인도네시아어로 화장실을 얘기했는데 교사는 무슨 말인지 몰라 아이가 그렇게 됐다. 큰 문제는 앞으로다. 엄마로서 많은 정보를 갖고 아이를 교육시켜야 하는데 한국 엄마처럼 그렇게 해 주질 못할 것 같아 아이에게 늘 미안하다."
짠= "우리 아이는 언어에는 잘 적응하는 편이다. 집에서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같이 하는데 처음엔 헷갈려 하는 것 같더니 요즘엔 아빠와 얘기할 때는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하고, 내가 베트남말로 해도 이해하고 대꾸한다. 이대로 잘 이어갔으면 하지만 나중에 학교 들어가서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시험 보는 게 아니라 엄마가 시험 본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아이와 함께 해야 할 게 많은데 한국 아줌마와 사귀는 것도 쉽지 않는 탓에 어떻게 아이 교육을 시킬지 막막하다."
리= "중국에서 온 지 10년이 넘는 데다 한국말도 잘하기 때문에 내가 말하지 않으면 결혼이주여성으로 보질 않는다. 아이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학교 교사에게 내가 다문화인이라는 걸 얘기하지 않았다. 망설이긴 했지만 혹시라도 그 얘기가 아이 친구들에게 들어가서 아이가 놀림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해서였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해 시선이 여전히 좋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문화자녀 용어, 오히려 차별
리=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결혼이주여성들을 지원하려는 뜻에서 나왔지만 오히려 다문화인을 한국 사람이 아닌 부류로 틀을 짓는 의미로 들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다문화자녀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참 치명적이다. 어머니가 외국에서 왔지만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한국 사람인데 다문화자녀라고 불러서 오히려 차별받을 수 있게 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여성들은 높게 보고,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을 낮게 보는 게 현실 아닌가."
수시= "결혼이주여성들이 걱정하는 건 아이다. 얼마 전에 들었는데, 일본 출신 어머니가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아이 친구들이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 집 앞에서 놀렸다고 했다. 철없는 아이들의 행동이라고 별스럽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가족에겐 고통이다. 그런 상황인데 다문화라는 말을 좋아할 부모는 많지 않다. 다문화자녀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 예컨대 아이들이 교사를 많이 따르는데 다문화강사로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에 결혼이주여성을 보내 자국 문화를 소개하고 얘기해 주면 아이들은 많은 관심을 보인다. 실제로 필리핀 여성이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의 인식이 확 바뀌었다고 들었다. 아이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정리=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 기고/ "다름을 인정 못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는 18만2,000명의 결혼이주여성과 12만2,000명의 자녀가 살고 있다. 배우자와 가족까지 감안하면 60만명 내외가 다문화가족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이들을 위해 한국어와 자녀 양육법 교육, 직업 훈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데 안타깝게도 센터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최근 국제결혼이 크게 늘고 있고, 더구나 결혼이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다 보니 각종 결혼 피해와 폭력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들고 센터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센터를 이용하고 있는 다문화가족의 사연을 들어 보면 많은 경우가 센터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 중 제일 큰 것은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선입견이다. 선입견은 커다란 장벽으로써 너와 나를 다른 이로 규정한다. 아무리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해도 한국 사회는 여전이 이들을 다른 나라에서 온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결혼이주여성의 자녀들이 학교에 갈 때가 되면 엄마들의 고민은 한결같다. 혹시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들을 우리로 받아들여 더불어 살 수 있는 수용 정신이다. 모두가 같은 색을 지닌 것에 안도하고 편안해 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서로의 다름을 볼 수 있고, 그 다름을 통해 자극받으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공정한 사회’이고 선진사회인 것이다.
모두의 마음을 조금씩 여는 것, 이것이 아름다운 다문화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고선주 전국다문화가족사업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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