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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겨레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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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겨레말을 생각한다

입력
2010.10.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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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한 외국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나라의 한국 동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이민자들을 당신 나라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데 어떤 기준이 있는가를 내가 물었다. 당연히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고 있어야겠다. 그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방식으로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외국인 친구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자기 나라의 농담을 이해하고 그 농담에 같이 웃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능통한 영어 실력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던 내가 부끄러워진 순간이었다. 언어는 사실 말과 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고 역사이며 문화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 시대의 소통이다. 농담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정도로 그 나라 말에 능통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큰사전 편찬사업 예산지원 줄여

그 외국인의 나라에서 1년 반 정도를 산 적이 있다. 당시로서는 어렸던 아이를 돌보느라 바쁘고, 게으름과 소심함이 또 한 몫을 더 해 영어를 배우려는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영어 실력은 조금도 안 느는데, 어쩌자고 그네들이 하는 감탄사가 입에 붙어버렸다. 오 마이 갓, 웁스... 그런 것들. 그 감탄사가 입에서 떨어지지를 않아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한동안 눈총을 받기도 했다. 뻔히 알면서도 그걸 떨어내는데 한참이 걸렸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고 우울하고 괴로웠던 마음 전부가 아마도 그 감탄사에 붙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름대로는 소통의 가장 절박한 표현이었겠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어도 한 순간의 마음만큼은 표현하고 싶었겠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놀랍고 당황스러울 때 뭐라고 말을 하나? 에그머니나, 어머나... 설마, 하느님 맙소사... 그런 말도 할까? 엄마야 라고 할까, 어머니라고 할까, 그것도 아니면 오마니라고 할까. 영어로는 입도 잘 못 떼는 주제에 오 마이 갓은 그리 잘 하면서도, 북쪽에서 쓰는 말은 이 정도도 알지 못하니 절박한 순간에 같이 나눌 말 한마디도 알지 못하는 셈이다. 농담이야 오죽 하겠는가. 나뉘어 산지 60년이 지났으니 그 세월 동안에 따로 쌓인 것들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하나의 언어로 뭉친 한 겨레다.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으니 그 뿌리의 정신이 같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다. 이념과 체제의 차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차이들을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마찬가지다.

겨레말큰사전이라는 게 있다. 남쪽과 북쪽의 말을 하나의 사전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남쪽과 북쪽은 자모의 순서부터가 다르다. 이걸 통일하여 하나의 사전으로 만들자니 남과 북이 만나야 하고, 의논해야 하고, 타협해야 하며 결정해야 한다. 남과 북 뿐만이 아니다. 해외 각지에 흩어져있는 동포들의 말이 또 다르다. 그리고 사투리가 또 있다. 이 방대한 작업을 위해 겨레말 큰사전편찬사업회가 2006년에 만들어졌고, 지난 5년 동안 절반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편찬사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이 호소문 형식으로 발표한 바에 의하면, 정부의 예산 지원이 줄어들거나 중단된 것이 가장 큰 문제인 모양이다. 돈 없이 사업을 어떻게 하겠는가. 정부가 그걸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왜 돈을 안 주나.

이념 떠나 겨레말 되살려야

말을 보존하고 되살리는 일에 이념을 들먹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이념조차도 말로부터 나온다. 욕도 말로부터 나오고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다. 겨레말이 살아 그 모든 것들을 끌어 안아야 할 것이다. 말은 모든 것의 시작은 아니지만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시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전 편찬을 위해 돈 달라는 말,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겠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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