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듯, '봄 주꾸미 가을 낙지'란 말도 있다. 가을바다는 바야흐로 낙지의 계절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9~10월이면 배 안에 밥풀과 같은 알이 있는데 즐겨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전남에서 낙지를 '낙자'라 부른다. 추측컨대 子(자)란 존칭으로 낙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낙자도 뻘낙자가 지존이다. 남도에서는 뻘, 즉 개펄이 맛의 보물창고다. 낙지 한 마리도 뻘에 주소를 둔 것은 바다에 주소를 둔 것과는 대접이 틀리다. 산낙지로 먹어봐도 뻘낙의 힘과 맛이 확연하게 뛰어나다. 낙지 빨판이 입천장에 붙으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맛은 쫄깃하고 구수하며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깊다.
언젠가 벗들과 남도 뻘낙을 산낙지로 해서 먹다가 안주가 모두 접시를 탈출하는 바람에 손등이나 뺨에 붙여놓고 하나씩 떼어 먹었던 에피소드도 있다. 최근 서울시장이 낙지에게 시비를 건 모양이다. 서울시는 낙지 먹물과 내장이 카드뮴 등 중금속에 오염이 됐다며 서울시민들에게 먹지 말라는 발표를 했다.
이에 항의하며 뻘낙지의 본향인 전남 무안, 신안 출신의 국회의원이 세발낙지를 들고 서울시 국감에 나타나 '낙지 국감'이 됐다고 한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서울시장과 낙지 중 누가 힘이 셀까? 내 생각엔 아무래도 서울시장이 아직 뻘낙지 빨판의 힘을 모르는 것 같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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