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가천의대와 통합 땐 전국 3위의 매머드 종합대학"
수도권에 있는 4년제 사립대가 통합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합치기'에 따른 득실을 치밀하게 계산해 어느 한쪽이라도"손해본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통합 논의는 즉시 중단된다. 여러 대학들이 그랬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야하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구조조정이 절박한 상황이나, 4년제 사립대 간 통합은 오히려 점점 어려워지는 양상이다.
서울 강남의 끝이자 경기 성남 초입에 위치한 경원대는 정반대다. 2012년이면 같은 재단인 가천의과학대(인천 소재)와의 통합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4년제 대학으로는 첫 통합이다. 주인이 같더라도 교수 학생 등 학교 구성원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 통합을 이끌어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지만, 경원대는 거뜬히 극복해냈다. 이길여 총장은 12일 "10대 사학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봐 달라"고 했다. 두 학교의 통합이 국내 10대 사학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총장은 특히 15일 준공식을 갖는 매머드 지하캠퍼스 '비전타워'를 주목해달라고 했다. 국내 대학 중 캠퍼스와 지하철이 바로 연결되는 첫번째 사례라는 것 외에도 가천의과학대와의 통합시 성장동력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_경원대와 가천의과학대를 왜 합치려는 건가요.
"시너지 효과의 극대화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경원대는 인문학과 공학, 사회과학, 예술분양 등이 강해요. 반면 대학 발전의 필수조건인 의약생명공학 부분은 약합니다. 가천의과학대는 알려져있다시피 의학, 약학, 보건, 생명과학이 특화돼 있어요. 두 대학이 합치면 어떻게 될지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_시너지 효과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요.
"양 대학의 장점과 특성은 손을 대지 않을 겁니다. 단점과 취약점을 집중적으로 보완해 나갈 생각이에요. 지금은 다른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조금 뒤처지지만 통합이 이뤄지면 충분히 약점을 극복해걸로 믿고 있어요."
이 총장은 양 대학의 통합을 '화학적 통합'으로 규정했다. 단순한 덧셈의 통합이 아니라 곱셈의 결과치를 도출해 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양 대학의 법인을 단일화 한 것도 통합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_통합을 위한 구조조정이 당연히 필요하겠네요.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안 합니다.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을 유도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교수나 직원 등 구성원들에게 상처를 주는 개혁은 반대해요. 명확한 기준에 근거한, 천천히 가는 개혁이 이뤄질겁니다."
_어떻게 한다는 건가요.
"경원대의 개혁작업을 소개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모든 학사 운영이학생 중심이지요. 예컨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교수강의평가제 도입, 3시간 연속강의 금지, 연구능력 미달 교수의 승진 탈락, 뭐 이런 것들입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교수들이 연구실적 부족으로 승진에서 탈락했어요.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교수들도 늘고 있어요. 그만큼 구조조정이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닌 정확한 기준에 의해 객관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잡음이 없는 것입니다."
_통합 대학의 이름은 결정했나요.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서 정학 계획이에요. 통합 후 늦어도 10년 내 10대 사학 진입이 목표인 만큼 통합 대학의 명칭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해요. 적절한 이름이 나올거라고 보고 있어요."
_비전타워 건설은 어떻게 봐야 하나요.
"2012년에 두 대학이 통합하면 입학정원 기준으로 전국 3위권 매머드 종합 대학이 돼요.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의학, 한의학, 약학, 바이오나노, 뇌과학, 암당뇨 등 바이오메디컬의 핵심 분야를 두루 갖춰 통합에 따른 시너지가 넘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비전타워는 두 대학의 단일 법인인 가천경원학원의 탄생과 위상을 상징하는 또하나의 캠퍼스지요. 비전타워는 지하철 개찰구와 평균 깊이 13m의 지하 캠퍼스가 지상출구 없이 바로 연결돼요. 지하철에서 논스톱으로 대학 캠퍼스 진입이 가능한 국내 최초의 지하철 직통 구조입니다. 지역의 명물로도 손색이 없어요. 세계적인 조명예술 가인 알랭 귈로가 빛을 통해 건물 실루엣과 선을 부각시키는 경관조명을 연출하고 있어요. 앞으로 성남의 새 랜드마크가 될 겁니다."
_경원대 캠퍼스의 지형이 달라졌겠네요.
"성남 지역의 건물 고도제한을 피하면서 비좁은 땅에 대학생들이라면 꼭 필요한 넓은 광장을 만들어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결론은 지하 캠퍼스였어요. 지하철로 바로 이어지는 새 캠퍼스 건물의 등장으로 학생들의 진입 동선이 짧고 편하게 바뀌게 됐어요. 또 공간 효율화로 그 동안에 없던 두 개의 큰 광장을 학생들에게 돌려주게 됐어요. 그 곳에 모여 놀고, 공부하고, 토론하며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걸 보니 뿌듯해요."
_벤치마킹한 곳은 있나요.
"건물 설계를 위해 몇군데를 직접 다녀왔어요. 일본의 시오도메 전철역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 팰리스 호텔이지요. 이 곳들을 벤치마킹했습니다. 시오도메 역에서는 인근 백화점과의 논스톱 지하 통행로, 시저스팰리스 호텔에선 '스카이 실링'(실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인공 천장. 맑고 흐리고 비오고 천둥치는 장면 연출이 모두 가능)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어요. 소중한 경험들이 비전타워에 녹아있어요. 공사에만 꼬박 3년이 걸린 '역작'이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산부인과 의사에서 병원 경영자, 교육자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철(鐵)의 여인' 닉네임이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 총장은 변화를 즐기고 있었다. 비전타워 건립도 따지고보면 통합을 염두에 두고 추진한 변화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_학내에서 변화가 가장 시급한 분야가 있을텐데요.
"당장 변화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긴 해요. 글로벌 교육시스템을 갖추는것이고, 이걸 가능하기 위해 구성원 마인드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렇게하려면 여러가지가 필요할 겁니다. 교육의 내실화, 즉 커리큘럼 개편이 뒤따라야 해요. 교수 연구업적이나 강의평가 강화 등의 조치도 수반돼야 겠지요. 교수 입장에선 뼈아픈 고통과 자기 희생이 힘들겠지만, 명문 사학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개혁 조치들이라고 봐요."
_우물만 개구리식의 개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글로벌 경쟁력은 어떻게 해야 강화될까요.
"글로벌화란 국제사회에서 경쟁해 나갈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공부하고 미국, 일본, 중국 등 외국 기업에 취직해 지장 없이 근무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봐요. 얼마 전 일본중공업이 국내 대학 취업박람회에서 신입사원을 뽑았고, 중국 기업도 미국에서 합동으로 신입 사원을 선발했어요. 이런 취업의 세계화 흐름에 맞춰 세계 어디서도 통용되고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편성해야 해요."
_외국어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의미인지요.
"그렇다고 봐야 겠지요. 무엇보다 영어가 필수가 아닐까요. 경원대는 이에 대비해 전교생 영어 졸업인증제를 시행하고 있어요. 호응이 대단하고 효과도 나타나고 있어요. 학생들의 영어인증시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됐어요. 영어 졸업인증제의 실효성과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도 강구하고 있어요. 영어 우수자를 대상으로 방학 중 영어몰입캠프와 전액 교비지원 해외연수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어요. 영어의 비중은 앞으로도 더욱 위력을 떨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효과를 보고 있나요.
"입학사정관제가 대학이 추구하는 인재상에 부합하는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분명해요. 대학 내에 입학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했어요. 경원대는 모집정원의 9% 정도를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선발하고 있어요. 입학사정관 전형은 장점이 많지만 실제 선발과정에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선발 인원 확대에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봐요. 앞으로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입학 인원을 급격하게 늘리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늘려갈 생각입니다."
그는 국가의 핵심 대입시 정책을 평가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입학사정관제의 한계에 대해선 비교적 소신을 드러냈다."전문성을 지닌 입학사정관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과제라고 봐요. 입학사정관이 전문성에서 떨어진다면 해당 전형은 실패한 전형임에 틀림없어요. 공정성을 확보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요즘 대학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가 연구중심이 될 것이냐, 아니면 교육중심대학으로 운영할 것인지 여부다. 이 총장은 비교적 명확한 입장을 내놓았다.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이 최고의 교육중심대학이라고 생각해요. 구분을 두는 것은 적절치 않아요. 학교 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연구력 신장 없이 교육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연구든 교육이든 얼마나 글로벌 기준에 맞춰 가느냐가 중요할 겁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국제 기준의 커리큘럼을 받아들여 가르치고 연구해야만 취업률을 올릴 수 있고 해외 우수인재도 유치할 수 있습니다."
이 총장은 통합 후의 밑그림을 이미 그리고 있었다. 자력으로 불가능했던 의대 약대 뇌과학 암당뇨 등 의료생명보건분야를 통합을 통해 확보함으로써 20~50년의 장기적 관점에서는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하는 전기가 마련됐다고 믿고 있다. 의대가 뒷받침하는 병원과 병원 중심의 바이오메디컬분야 연구 결과의 다양한 상용화 수입들이 미래 대학의 주요 재원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세계 대학사(史)나 미국 대학들을 봐도 의료생명보건분야 없이 명문반열에 안정적으로 진입한 사례는 극히 드물지 않나요?"
인터뷰=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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