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은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당분간 자진 사퇴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다음달 신한금융에 대한 종합검사 후 “필요할 경우 라 회장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면서 압박수위를 더 높였다. 특히 라 회장의 징계사유가 됐던 실명제 위반부분은 정치권에서 새로운 의혹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어 사태는 점점 더 확산되는 분위기다.
라 회장은 자신의 입장을 밝힌 직후 해외투자자를을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IR)를 이유로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라 회장 “시간을 달라”
라 회장은 11일 아침 출근 길에 신한금융 본사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징계 통보 이후 자신의 입장을 처음으로 피력했다.
그는 “거취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내년 3월 주주총회 때까지) 경영공백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본인과 신상훈 지주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등 신한 수뇌부 3인의 동반 퇴진에 대해 “(혼란기에 한꺼번에 물러나면) 조직이 어떻게 되겠냐”면서 “누군가는 계속 남아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조기 퇴진의사가 없음을 피력한 것이다.
금융실명제 위반과 관련해서는 “과거에 밑(부하 직원)에 시켜서 한 것이 나도 모르게 관행적ㆍ습관적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고 해명했다. 차명계좌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차명계좌 운용에 관해서는 개입하지 않아 실명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주장.
결국 이날 밝힌 라 회장의 입장은 ▦최소한 내년 3월 주총 때까지 회장직을 유지해 ▦자신이 신한 사태를 직접 수습하겠다는 의지로 요약된다. 당분간이라도 현직 유지를 위해선 중징계 가운데 가장 낮은 ‘문책 경고’를 받아야 하는데, 라 회장측은 ‘최소 직무정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금융당국을 상대로 문책수위를 낮춰줄 것을 집중적으로 소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자신의 입장을 밝힌 라 회장은 이날 저녁 8시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라 회장은 지난 2일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연차 총회와 해외 IR 등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했다가 금융당국의 중징계 통보를 받은 다음날인 지난 8일 대책마련을 위해 급거 귀국한 바 있다.
신한 관계자는 “이번 출장은 당초 계획됐던 해외 IR 일정을 마치기 위한 것이다”며 “뉴욕과 런던, 파리, 싱가포르에서 열릴 IR에 참가한 후 27일 귀국할 예정이다”고 밝혔지만 라 회장의 출장이 국정감사 회피용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정감사는 22일 끝난다.
금융당국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기류는 라 회장의 소망과 달리 훨씬 강경하다.
현재 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원칙대로 하겠다”는 것.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미 당국의 ‘원칙’은 라 회장 퇴진에 맞춰져 있다는 게 금융권의 해석이다. 최고경영자가 실명제를 위반하고, 지주회장과 은행장이 사장을 고소하는 사상 초유의 경영진 내분사태를 일으킨 상황에서, 아무리 경영공백 최소화가 중요하다 해도 ‘정상참작’이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당국자는 “라 회장이 없다고 신한이 당장 무너질 조직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당국이 봐주기 식으로 갈 경우 여론도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압박수위는 11월로 예정된 신한금융 종합검사 때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정감사 답변에서 “다음달 금감원이 실시할 신한 종합검사에서 신한 사태와 관련한 라 회장 등의 책임 여부를 살펴본 뒤 책임문제가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정감사에선 “차명계좌가 1,000개가 넘는다” “이백순 행장이 관리했다”는 추가의혹이 제기됐다. 진 위원장은 “이 역시 11월 검사 때 살펴보겠다”고 말해 향후 보다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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