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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가을이라는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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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가을이라는 물질

입력
2010.10.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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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가을은 서늘한 물질이라는 생각이 나를 끌고 나무나라로 들어간다

잎들에는 광물 냄새가 난다

나뭇잎은 나무의 영혼이 담긴 접시다

접시들이 깨지지 않고 반짝이는 것은

나무의 영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햇빛이 금속처럼 내 몸을 만질 때 가을은 물질이 된다

나는 이 물질을 찍어 편지 쓴다

촉촉이 편지 쓰는 물질의 승화는 손의 계보에 편입된다

내 기다림은 붉거나 푸르다

내 발등 위에 광물질의 나뭇잎이 내려왔다는 기억만으로도

나는 한 해를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오만한 기억은 내 발자국을 어지럽힌다

낙엽은 가을이라는 물질 위에 쓴

나무의 유서다

나는 내 가을 시 한 편을 낙엽의 무덤 위에 놓아두고

흙 종이에 발자국을 찍으며 돌아온다

● 모든 예술이란 시간예술이에요. 오랜 시간 공들이면 모든 게 예술이 되니까요. 꼭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만 예술이 되는 건 아니죠. 예컨대 매일 하늘을 찍는다면 그것도 어엿한 예술입니다. 일주일만 찍고 그만두면 그냥 하늘을 찍은 무의미한 사진들에 불과하겠지만, 가을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매일 찍는다면, 그래서 첫 눈이 내리는 날 그 사진들을 인화해서 벽에 붙여놓는다면 작품이 되는 것이죠. 이번 가을, 웃음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은 어떨까요? 웃을 때마다 이유와 강도를 적는 거죠. 그리고 아는 사람들에게 읽어주면 그것도 하나의 예술. 이런 것도 예술이 되는 까닭은 2010년 가을은 우리에게 단 한 번뿐이니까.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매일 하늘을 사진으로 찍거나 웃음을 기록한 사람은 당신 하나뿐일 테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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