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판기념회 축사를 하던 고은 시인이 그랬다. "시는 결핍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이다." 결핍이 무엇인지 딱 부러지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시인의 에 등장하는 필부들의 삶을 통해 그 의미를 더듬어 볼 수는 있다.
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내 이웃의 진짜 이야기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결핍과 고난의 삶을 증언한다. 살아서 사람대접 한 번 못 받고 죽어서도 이름 석 자 새길 돌 하나 없는 사람들, 하도 없이만 살아서 슬픔이라도 풍년 들기를 바라는 농투성이들, 그렇게 허기져 살아도 부잣집 아이가 주는 떡 탁 쳐서 거절하는 김만식 아들 창술이, 머슴살이하면서도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하고 되뇌는 대길이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 이야기가 다.
광주 비엔날레가 를 주제로 차용했다. 재남이 아저씨 집에서 목단 꽃 한 송이 꺾어 온 채순이더러 "이년아/우리 집에 꽃은 무슨 놈의 꽃이여/훔쳐오려면 쌀 한 되 훔쳐오지"하고 꾸짖는 어머니처럼 토착 정서로 가득한 를 이탈리아 사람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총감독이 어떻게 그려 낼 수 있을지 흥미로웠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지구촌 장삼이사가 주인공인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엘리스 콕의 은 티베트 판 다. 고향을 떠나 인도로 간 사람들이 티베트의 가족들과 서로 안부를 묻는 내용을 영상으로 담았다. 케종고와 케종추 마을 출신의 곱상둘마, 잠바초좀, 텐진초상 같은 장삼이사들이 주인공이다. 큰 도시를 찾아 인도로 간 오빠에게 어머니 장례를 잘 치렀다고 소식을 전하는 자매, "여긴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아무것도 보내지 마라. 네가 잘 있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이다"라고 자나 깨나 딸 걱정하는 늙은 어머니, 산 아래 고향 계곡을 그리며 가족들이 다시 모여 살 수 있기를 노래로 전하는 젊은 애 엄마,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도 "여기는 걱정하지 말라"고 멀리 있는 가족을 배려하는 심성은 어디나 똑 같다.
는 농촌 마을의 일상사를 지역민들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태어나서 비디오카메라 한 번 본적 없는 마을 사람들이 찍은 영상에는 농촌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마실 나온 아주머니들, 빨래터의 노인, 길가에서 벌어진 서양식 결혼과 잔치는 1960년대 우리 농촌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의 캄캄한 시골 필부들 이야기가 무슨 감동을 주겠느냐고 할 수 있지만 꾸미지 않은 삶의 진정성은 사람을 웃고 울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1930년대 미국의 아칸소에 사진관을 열고 지역 주민들의 가족사진을 찍은 마이크 디스파머의 작품, 테디 베어를 안고 있는 사람들 사진을 모은 이데사 헨델레스의 , 노부부의 초상 사진과 도시에 살고 있는 손녀의 사진들을 보여 주는 강봉규의 , 캄보디아 프놈펜 수용소 수감자들을 찍은 에도 모두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현대 미술이 오랜만에 사람을 말하고 있다. 한 번도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결핍에서 시가 써지듯 미술 역시 필부들의 결핍된 삶을 진실하게 묘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광주 비엔날레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건강한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인이 바로 지구촌 곳곳 장삼이사들임을 상기 시킨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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