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차려진 고 황장엽 북한노동당 비서의 빈소에는 하루 종일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날 300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 전날 밤 경찰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 조문객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는 바람에 경직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지만 경찰이 이날부터 통제를 풀면서 여느 빈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조문이 진행됐다.
장례식장 1층 로비에서부터 턱 앞에 두 손을 깍지 낀 온화한 표정의 황 전 비서 영정이 대형 전광판 한 켠에 떠 조문객들을 맞았다. 빈소 입구 벽면에는 '고인 황장엽, 상주 김숙향'이라고 적힌 흰색 종이가 붙었지만 이명박 대통령 현인택 통일부장관 등 정부 인사와 북한자유연맹 등 각계에서 보낸 수 십 개의 조화가 빈소에서부터 10m 떨어진 계단 앞까지 가득 차 빈소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상주인 김씨와 북한 관련 단체대표 등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은 장례 일정과 절차 등을 논의하며 조문객도 맞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날 빈소에는 정치인들의 조문이 대거 이어졌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 10여명이 빈소를 찾아 상주 김씨와 탈북자 대표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김 원내대표는 "북한이 자유의 나라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셔서 안타깝다"며 "황 선생은 북한 동포들이 고통 받는 것을 알리기 위해 친지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곳에서 많은 역할을 하셨다"고 애석해했다. 김 원내대표의 조문에는 나경원 정두언 서병수 최고위원, 고흥길 정책위의장, 배은희 대변인도 동행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황 전 비서를 개인 황장엽, 망명인 황장엽이 아닌 위대한 의인으로 기억해야 한다"며 그를 기렸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오전 11시께 빈소를 찾아 위로의 말을 전하자 상주인 김씨는 "(어른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장관님을 만나길 원했는데 그렇게 빨리 가실 줄 몰라 미처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탈북자 대표들은 이 장관에게 "현충원에 묻힐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오후 6시께는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빈소를 찾아 상주와 10분간 대화를 나누며 위로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도 빈소를 찾았다.
북한의 민주화에 열정을 쏟았던 황 전 비서의 뜻에 공감해온 일반인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김모(60)씨는 "주체사상을 만들다 그 잘못됨을 바로 잡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이라며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황 전 비서를 평소 존경해왔다는 박모(66)씨는 "저런 분이 오래 사셔야 되는데 통탄할 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일반 조문객 중 상당수는 탈북자인 듯 기자들이 다가가 신분을 묻자 손사래를 치며 서둘러 빠져나갔다. 반면 북한 인민군 출신 탈북자들로 구성된 북한인민해방전선 회원 10여명은 진회색 전투복 차림으로 조문하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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