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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자녀 32명 '희망의 캘리그래피'/ "내가 쓴 초록 글자, 암투병 엄마 지킬 나무 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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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자녀 32명 '희망의 캘리그래피'/ "내가 쓴 초록 글자, 암투병 엄마 지킬 나무 될거예요"

입력
2010.10.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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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을 쓸 거에요. 세상에서 젤 큰 나무로 자랄 새싹인데요. 저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상화(15ㆍ이하 가명)는 조심스레 붓을 들었다. 새하얀 셔츠를 잠시 노려보더니 초록 물감에 두세 번 붓을 적셨다. 연필이나 볼펜이 아닌 붓이라 어색한 걸까. 'ㅅ' 하나를 쓰는 데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화는 "어려워요. 근데 재미있는 걸요"라며 씩 웃어 보였다.

한글날인 9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문화체험공간 삼청각으로 상화를 포함한 10대 32명이 나들이를 했다. 제약업체 한국아스트라제네카가 주최한 '희망의 캘리그래피(calligraphyㆍ손글씨 꾸미기)' 행사장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하늘이 정말 예뻐요"라고 감탄한 청명한 하늘 아래 총 8개 조로 나눠 자리를 잡은 아이들은 유쾌했다. 각자의 탁자 위에 놓여진 나무젓가락 수세미 칫솔 붓 등을 잡은 아이들 손이 쉴새 없이 움직였고, 아이들의 입 역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행사분위기와는 달리 아이들의 가슴에는 사실 어둠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다. 굳이 행사 제목에 희망을 앞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32명의 아이들은 모두 부모 혹은 조부모가 암을 앓고 있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아픔을 견디며 살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관계자는 "손글씨로 각자의 작품을 만드는 것, 서로가 준비한 셔츠에 그려진 자신과 친구의 작품 속에서 함께 희망을 느끼고 서로 나누자는 게 행사의 목적"이라고 했다. 아픔을 씻을 희망과 각오가 아름다운 손글씨로 표현되는 셈이다.

연습종이에 글씨를 써가며 꼼꼼히 연습을 하고 있던 지상(15)이도 지난달 암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퇴원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붓을 들었다.

아이가 쓸 글씨는 '두려움을 던지고, 나를 버리면 나를 다시 찾을 것이다'라는 꽤나 '어른스러운' 문구. "나이에 비해 너무 조숙한 문장 아니냐"는 질문에 지상이는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오늘은 밝고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두려움을 잊게 해달라고 기도해요"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지상이의 희망은 뭘까. "항상 밝게 지내고 싶어요. 그리고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게 나를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2005년부터 매년 암환자 자녀들을 위한 기금 모금과 문화 행사를 해왔다. '희망샘 기금'이란 이름으로 돈을 모아 아이들의 학비를 지원하고, 직업 체험이나 연극 활동 등 각종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사내 사회공헌위원회인 '희망배달부' 연제헌(38)씨는 "환경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라 역시 밝다. 희망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돌봐주고, 지켜봐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행사가 마무리될 즈음 상화가 자랑스레 작품을 들어 보였다. '새싹'이라는 한글이 초록색 등 오색으로 꾸며진 한 그루의 나무로 탈바꿈해 흰 셔츠에 새겨져 있었다. 상화는 이를 입고 아침에 "가서 까불지 말고 잘 있다 와라"고 신신당부한 할머니에게 자랑을 할 거란다. 그 안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까지. 상화는 현재 두 동생과 두 번이나 암 수술을 받은 할머니와 살고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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