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0일 "진보의 가치 실현을 기본으로 하고 중도를 끌어 안는 방향으로 당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1주일 전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손 대표는 이날 국회에 있는 민주당 대표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더 큰 민주당, 더 큰 진보를 실천할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손 대표는 또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에 대해선 "비정상이고 상식 밖"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상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왜 민주당 당원과 대의원이 손 대표를 선택했다고 보는가.
"국민들이 요구하는 변화, 당원들이 요구하는 정권교체, 그 열망의 표현이고 반영이라 생각한다. 저는 이번 전당대회 초반부터 집권 의지를 강조했다. 현실에 안주하는 야당이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집권 의지를 가진 야당이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
-당 운영 과정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자 하는 부분은.
"당의 변화 목표는 세 가지이다. 신뢰받는 정당, 능력 있는 정당, 이길 수 있는 정당이 되도록 할 것이다. 모든 것을 국민 중심으로 해야 한다. 말과 구호, 이념 논쟁에 그치지 않고 진보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진보세력과 손잡고 통합하고, 중도세력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외연을 더 크게 넓힐 것이다. "
-손 대표는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지만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경력은 계속 부담이 될 수 있는데.
"이번에 당원들이 손학규를 민주당 대표로 뽑아준 까닭이 무엇인가. 변화와 민주당 집권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그 문제를 제기하겠지만 정권교체를 요구하면서 격차와 차별이 없고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를 바라는 사람은 그런 문제 제기가 의미 없다고 여길 것이다."
-대표 수락 연설에서 이명박정권에 대해 '폭정'이라고 비판하는 등 처음부터 강경하게 움직이고 있다.
"현 정부는 한마디로 국민을 무시하고 짓밟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용산참사이다. 말로는 친서민정책을 외치지만 서민은 안중에 없다는 것을 이번 배추 파동을 통해 알 수 있다. 관심을 가졌으면 배춧값 폭등을 예견하고 대비했어야 했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없는 것은 정권의 철학 빈곤 때문이다. 단순한 실정(失政)을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후퇴시켰다. 또 권력기관이 다시 살아나는 등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공정사회'를 강조하고 있는데.
"공정한 사회를 제기한 것은 시대적 요구를 잘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 정부의 공정사회론에는 진정성이 없다. 차별과 격차, 특권과 반칙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려는 의지가 보일 때 공정사회론이 정당성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장관 임명 등을 보면 그렇지 않다."
-북한의 3대 권력세습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민주당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비정상이고 상식 밖이다. 워낙 왕조체제라면 모르지만… . 세습체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북한의 세습체제를 비판하면서도 북한과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 속에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세습체제라고 해서 상대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현 정부의 북한 관련 철학은 부족하고 빈곤하다. 북한에 대한 동포애도 없다. 설사 (우리가 지원하는 쌀이) 군량미로 쓰이더라도, 그 군량미가 없으면 그나마 북한 주민들이 먹을 쌀을 군량미로 써야 하니 그 동포들은 더 굶주리게 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북한 주민을 살리면서 북한과 공존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평화정책이고 포용정책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는 등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동아시아가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좀더 능동적으로 남북한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면 북한은 중국의 종속변수가 될 수 있다.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으로 발전시켜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강 사이에서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조금 더 진보 쪽으로 갈지, 아니면 중도 쪽으로 갈지 궁금하다.
"진보 담론이 활성화한 건 우리 사회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사회적 분열, 양극화 심화가 진보를 요구하고 있다. 진보화는 민주당의 필요조건이고 민주당 노선 설정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 그냥 야당으로만 남겠다고 하면 좌 클릭하는 데서 그칠지 모르지만 거기에 더해 우리는 한나라당을 찍은 우리 지지자들, 중도세력을 끌어안아야 집권이 가능하다. 진보ㆍ개혁ㆍ중도 삼합 필승론을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집단지도체제에서 당을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
"당의 화합과 단합은 수권정당으로 가는 데 필수요건이다. 당에서 세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지도부에 함께 들어온 것은 갈등 요소가 되기보다는 경쟁을 통해 당의 힘을 더 키우는 긍정적 측면으로 작용할 것이다."
-주요 당직 개편도 단합에 방향을 맞출 것인가.
"당의 효율적 운영과 당의 단합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국익, 피해 산업 보호, 국민 행복에 기여 등 세 가지 원칙을 갖고 FTA에 임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재협상 요구 등 사정 변경이 생겼다. 당연히 당으로서는 변화된 상황과 재개정 요구에 대한 것들을 다 같이 검토해야 한다."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재협상을 지금 거론하긴 이르고 전반적인 사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정국의 핵심 쟁점인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은.
"4대강 사업은 국토 파괴를 가져오고 재정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토건 사업이다. 수질과 환경을 개선하고 꼭 필요한 수량을 확보하는 일은 괜찮다. 강 살리기를 제대로 하려면 상류 지천부터 해야 한다는 대안도 내놨지만 정부가 막무가내이니까 예산 투쟁을 통해 4대강 사업을 최대한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미 사업이 많이 진행돼 중단하기 어렵다는 게 여당의 논리다.
"그래도 국토를 완전히 파괴하기 전에 중단해야 한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4대강 공사의 규모와 시기를 조절해 남은 예산을 복지 분야에 쓰자고 주장하는데.
"일단 중단한 뒤 '지금까지 공사한 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런데 그냥 강행하고 있으니 폭정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여권에서 추진하는 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 여권의 개헌 논의는 정권연장 술책일 뿐이다. 현행 헌법만 잘 지켜도 대통령 권력집중은 해소할 수 있다."
-2012년 대선 때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하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지금은 단일화를 논의하기엔 이르다. 먼저 민주당이 수권정당이 되는 게 중요하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금은 상대방 인물에 대한 평가할 때는 아닌 것 같다."
대담=김광덕 정치부장
정리=정상원기자 ornot@hk.co.kr
■ 손학규 인터뷰 안팎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0일 인터뷰에서 갖가지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때 줄곧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민주화 투쟁 경력 등을 거론하면서 '결단의 정치인'임을 부각시키려 했다.
손 대표는 2012년 대선 관련 얘기가 나오자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계제가 아니다"며 입장 표명을 피했다. '진보와 중도 중 어느 쪽으로 갈 것이냐'는 질문에도 돌아온 답은 '모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식이었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답변 배경을 길게 설명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투사형' 야당 대표의 단호함도 드러냈다. 그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폭정'이라는 비판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4대강 강행 같은) 그런 게 폭정"이라고 쏘아붙였다.
또 '정치 경력이 화려하고 신사라는 평가도 있지만 분명하고 개성이 강한 정치인 모습은 별로 보여 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는 질문에도 곧바로 반박했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허허벌판 시베리아로 나올 때 보통사람 같았으면 할 수 있었겠느냐. 따뜻한 양지를 찾아 나온 게 아니다"고 말했다.
또 "이번에 내가 당 대표가 됐으니까 됐나 보다 하는 것이지 내가 전당대회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순리적이라고 판단한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무모하다 생각하지 않았을까"라며 정치적 결단력도 강조했다.
그는 1979년 10ㆍ26 당시 체포됐다가 사흘 후에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었다는 경험을 얘기한 뒤 "10 ∙26이 없었다면 사형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면서 '선명성'도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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