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한국문학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30대 작가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한 명인 소설가 윤성희(37ㆍ사진)씨가 등단 11년 만에 첫 장편소설 (문학동네 발행)을 발표했다. 윤씨가 (2001), (2004), (2007) 등 3권의 단편집에서 보여준, 그러니까 주변부적 존재들을 일일이 이야기의 주체로 호명하는, 한 곳으로 모이는 대신 한없이 번져나가는 서사를 구사하는, 그의 문학적 특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대가족이 나온다는 점에서도 작가의 기존 작품과 궤를 같이 하는 이 소설은 한 집에 사는 3대 8명의 가족 이야기다. 이 가족의 구성원들은 여느 소설의 등장인물에 비한다면 그리 특출한 데 없이 평범한 이들이다. 이야기에 뚜렷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윤씨는 이런 대수롭지 않아 뵈는 인물들을 통해 연신 빛나는 장면들을 빚어내는 연금술을 선보인다.
소설 도입부에서 이 집안의 유일한 손자 세대인 '나'의 부모가 결혼 전 연애하는 장면부터가 그렇다.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두 사람이 함께 찾은 모텔 방엔 앞서 머문 연인들_ 소설은 단역을 맡은 이 연인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데에도 넉넉히 한 쪽을 할애한다_ 의 정사 흔적이 남아 있고, 서로 무릎을 맞댄 이 농밀한 시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해주는 이야기란 게 아이스박스에 이틀 동안 갇혔던 어릴 적의 해프닝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시종 분위기에 안 맞게 소소하고 밋밋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진심을 확인하고픈 마음을 슬며시 대화에 얹는다. "걱정 마요. 여섯 살 때까지만 4대독자였으니까. 다행이죠. 누가 4대독자와 결혼하겠어요?" 이어 자신의 세 동생 중 누가 공부를 제일 잘했을 것 같은지 묻더니 정답 대신 이렇게 돌려 말한다. "직접 물어보세요, 동생들한테." 흘려 듣기 좋은 말이건만 어머니는 용케 그것이 프로포즈임을 알아채고 답한다. "좋아요."
상대의 마음을 세심하게 느끼고 배려하는 것은 이들 가족의 공통된 품성이다. '나'의 부모를 포함한 4명의 혈육이 차례로 비명횡사하는 비극을 겪고도 이들 가족이 그때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금 잔잔한 삶의 기쁨을 회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맞닥뜨리는 기쁨과 슬픔의 대차대조표를 만든다면 이 소설은 분명 비극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소설은 근래 나온 젊은 작가들의 소설 가운데 가장 따뜻한 작품으로 기억될 만하다. 윤씨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능란한 문장 운용 솜씨도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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