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선배가 '입 속의 사건들'이라는 묘한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말 그대로 '낚여서'읽다 보니 입 꼬리가 절로 치켜 올라갔다. 치과에 다니면서 배운 이 닦기와 이를 실천하는 과정의 에피소드를 적은 글이었는데 말미에 그 선배는 "60년 이상 살아오는 동안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운 게 있었나"는 회한과 반성을 덧붙였다. 그런 사소한 일로 반성 운운 하는 선배가 못내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 문득"세상엔 무시해도 될 정도로 사소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를 닦을 때마다 이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선배의 낚시질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 선배가 잊고 있다가 치과 간호사에게서 새로 배운 이 닦는 법은 치열을 따라 루주 같은 빨간 물감을 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간호사는 치솔을 건네주며 평소 하던 대로 이를 닦아보라고 했다. 그 결과 군데군데 물감이 남아 치열은 흉물로 변했다. 간호사가 치솔을 건네 받아 "잇몸을 세게 누르면서 상하로 닦아야 한다"며 시연한 끝에 일단 앞니는 깨끗해졌다. 그러나 어금니 쪽은 여전히 문제였다. 이 때 간호사가 꺼내든 것은 '클리닝 팁'이라는 어금니 치솔. 보통 치솔로는 어금니 사이와 뒷면을 깨끗이 닦을 수 없어 치석이 많이 쌓인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 선배의 이 닦기 학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간호사의 다음 무기는 치간 치솔. 이것으로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 어금니와 송곳니 사이에 낀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더니 마지막으로 치실로 앞니 사이를 닦는 요령을 보여줬다. "번거롭고 힘들어도 음식을 먹고 난 후 이를 잘 닦아야 세균을 억제해서 충치를 예방한다"는 간호사의 말을 상기하며 선배는 집에서 이 과정을 되풀이해봤다. 이게 예삿일이 아니었다. 치솔 하나로 1~2분이면 뚝딱 해치웠던 이 닦기가 4가지 기구를 번갈아 사용하는'작업'이 됐고 시간도 20분 넘게 걸렸다.
■ 선배가 치과와 별개로 이 닦는 직업이 생길 수도 있겠다 생각한 것은 이 즈음이었다. 또 이가 썩는 것은 입안에서 꿈틀대는 수많은 세균의 활동 때문이고 치석은 이들이 죽은 시체가 쌓여 딱딱하게 된 것이니 이 닦기는 결국 이들과의 전쟁이자 사건으로 여겨졌단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건강한 치아는 오복의 하나이며 올바른 이 닦기가 중요하다는 잔소리를 수없이 들었지만 대부분 적당히 흘려 들었다. 뒤늦게 이 닦기 하나에도 노력과 정성이 필요함을 깨우친 선배의 탄식을 들으며 사소한 일의 중요함이라는 역설을 깨닫게 됐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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