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타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이 황씨 암살 위협을 거두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이 공식 데뷔한 날 황씨가 사망해 암살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시신에 외상이 전혀 없고 자택의 철통 경호ㆍ경비 체계로 볼 때 타살 정황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씨가 머물던 서울 강남구 논현동 2층 안가(安家ㆍ안전가옥)는 3m가 넘는 담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담 위에는 날카로운 쇠갈고리들, 안쪽으로는 굵은 철조망이 설치돼 외부의 침입을 전면차단하고 있었다. 건물 곳곳에는 여섯 대의 폐쇄회로(CC)TV가 사방을 감시했다. 한밤 중에 비상상황이 벌어졌을 때 집 주변을 대낮같이 밝힐 수 있는 2개의 조명등이 자택 구석에 설치돼 있었다. 담 위에 세운 10여대의 적외선경보기는 작은 새조차 담을 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황씨의 거처는 이웃 주민들에게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바로 옆 건물에 산다는 이모(50)씨는 "여기가 황씨의 집이었나. 뉴스를 보고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황씨의 자택에서 불과 30m 떨어진 슈퍼마켓 주인 김모(55)씨는 "여기서 장사를 3년이나 했지만 황씨를 본 적이 한번도 없다"며 "(황씨의) 집이 저기냐"고 엉뚱한 곳을 가리켰다.
건물 내부의 보안도 철통 같았다. 건물과 현관문 사이 마당 한쪽 구석에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맹견(猛犬)이 집 안 쪽을 지켰다. 건물 내부에선 각종 화기(火器)로 무장한 보안요원들이 황씨를 밀착 경호해왔다. 황씨의 침실이 있는 2층은 원거리 저격에 대비해 불투명한 방탄 유리로 둘러 쌓여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황씨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보안요원 1명이 같은 층에서 비상 대기한다"며 "지난 3월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북한의 암살 위협에 시달려 경호를 국무총리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렸다"고 했다. 게다가 황씨는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면 방문을 닫아 걸었다. 같은 층의 경비요원조차 황씨의 집무실 등에 출입이 쉽지 않았을 정도다.
한편 이날 황씨가 대북방송을 했던 자유북한방송과 30여개 북한관련단체들은 임시 장례위원회를 꾸렸다. 장례위원회 명예위원장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내정됐다. 장례위원회는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에서 임시 상주인 수양딸 김씨와 구체적인 장례절차를 논의했다.
빈소는 경비와 보완 유지가 비교적 쉬운 경찰병원이 거론됐지만 장례위원회와 유족은 분향실이 비교적 넓은 서울아산병원으로 정했다. 장례위원회 관계자는 "장례기간은 5일장으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장으로 하고, 시신을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는 방안 등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시신 운구와 장례 등의 과정에서 돌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병원 안팎에 경비ㆍ경호 인력을 배치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