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 개드립 완전 쩔지 않니?"
"연옌이라고 영화 오덕후라더라. 접때 귀신 얘기하는데 흠좀무던데."
"그래도 난 솔까말 걔 레알 병맛이야."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 지하철 안에서 만난 중학생 김모양이 친구와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나눈 대화다. 김양의 도움으로 해독한 내용인 즉, "개그맨 ○○○, 상황에 안 맞는 즉흥대사 정말 안 좋아" "연예인이라고 영화 마니아라던데. 지난번 귀신 얘기 하는데,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겠더라고" "그래도 난 솔직히 말해서 그 사람 (유머) 정말 어이없더라"였다.
한글과 우리말의 훼손이 갈수록 심각하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응시하는 외국인이 급증하는 등 한글의 세계화가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한글 오염으로 의사 소통까지 어려울 지경이다.
고등학교 교사 김모(31)씨는 최근 출근길에 "쌤, 오늘 옷이 쩔어요"라는 학생의 말에 한참 화를 내다가 학생들의 설명을 듣고 머쓱해졌다. 김씨는 "'쩐다'가 더럽거나 매우 좋지 않다는 뜻이라 여겼는데, 아이들이 '감동을 일으킬 만큼 굉장하다'는 의미로 쓰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고 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옷 가게를 하는 이모(36)씨는 10대에게 청바지를 보여줬다가 "쎄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세라(세일러)복이라 알아듣고 교복 풍의 짧은 치마를 보여줬다가 웃음을 샀다. 며칠 뒤 중학생 조카에 물었더니 쎄라는 '정말 아니다'라는 뜻이라고 가르쳐줬다.
요즘 등장하는 신조어는 사용집단의 문화를 모르면 알아듣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오덕후'는 일본어 오타쿠(마니아)를 변형시킨 말이라지만, '쎄라'처럼 어원조차 모르는 단어도 부지기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교사 455명에게 '학생들이 사용하는 은어, 비속어를 대부분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답은 14.7%에 불과했다.
한글을 쓰고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기에 우리말 바로 쓰기는 더욱 절실하다. TOPIK 응시자는 시행 첫해인 1997년 2,274명에서 지난해 17만507명으로 75배나 늘었다. 시행 국가도 첫해 한국 일본 카자흐스탄 등 4개국 14개 지역에서 올해 스페인이 포함되면서 39개국 136개 지역으로 확대됐다. 이에 더해 교육과학기술부는 8일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외국인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 TOPIK도 개발, 2012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고유언어는 있지만 이를 기록할 문자가 없는 소수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 보급 활동도 활발하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이 공식 문자로 한글을 채택한 데 이어, 태국 북부 산악지대의 라후족, 중국 소수민족인 로바족과 오르첸족 등을 대상으로 한 한글 보급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는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한글의 본래 모습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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