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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쥐뿔도 없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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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쥐뿔도 없는 것이

입력
2010.10.0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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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자락에 '서각'(鼠角)이란 아호를 쓰는 선배가 살고 있다. 그 서각을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쥐뿔'이다. 쥐엔 뿔이 없다. 쥐뿔이란 '아주 보잘것없거나 규모가 작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어서, 그 선배의 호는 '쥐뿔처럼 바짝 엎드려 살고 있다'는 겸양의 뜻이다.

그러나 쥐뿔 선배는 젊어서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며, 문학박사 학위까지 있다. 키는 훤칠하며 영화배우처럼 생긴 멋진 얼굴, 삶의 관록을 보여주는 은빛 머리칼, 술잔을 나누며 툭툭 던지는 말의 끝없는 깊이와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쥐뿔이란 호는 '쥐뿔도 아는 게 없으면 잘난 척하지 마라'는 경구란 것을 알게 된다.

요즘 부산과 경남지역 전통주점에 가보면 '씨부리지 마라. 다 알고 있다'는 경구가 적힌 달마상이 유행이다. 깨달음을 찾아 동쪽으로 갔다는 달마 선사가 그런 막말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 무서운 눈매와 마주치면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야단치는 표정이어서 입이 저절로 다물어진다.

'씨부리지 마라'는 말인즉슨 '그만 말해라' '입 닥쳐라'는 뜻의 경상도 비속어다. 묘한 것이 그 욕 같은 말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맛이 난다. 달마의 말씀은 진화를 해서 '씨부리지 마라. 다 보고 있다'도 등장했다. 쥐뿔도 없으면서,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를 마치 혼자서만 알고 있는 것처럼 너무 '씨부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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