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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위대한 설계' "우주 탄생의 비밀… 신에 호소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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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위대한 설계' "우주 탄생의 비밀… 신에 호소하지 않겠다"

입력
2010.10.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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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등 지음ㆍ전대호 옮김

까치 발행ㆍ252쪽ㆍ1만8,000원

과연 그럴 만하다. 왜 전세계 종교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고, 교황마저 “과학이 인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며 과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 나섰는지.

지난 9월 “신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종교와 과학 간 논쟁을 재차 촉발시킨 세계적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화제의 신간 가 번역됐다. 기독교 우파의 창조과학인 ‘지적 설계론’을 겨냥한 듯이 보이는 제목이지만, 이 책은 단순한 종교 비판이나 과학적 우주론에 대한 설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호킹이 미국 물리학자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와 함께 쓴 이 책의 목표는 더욱 도발적이고 궁극적이다. “철학은 이제 죽었다”(9쪽)는 대담한 선언으로 시작돼 곧바로 “왜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왜 우리가 있는 것일까” “실재란 무엇인가” 등 전통적으로 종교와 철학에서 다뤄져 온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지간한 골수 종교인이 아니라면 우리는 성경에서처럼 사람이 물 위를 건너거나 태양이 멈추거나 하는 등의 기적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즉 자연을 지배하는 물리적 법칙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신(神)이 자연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신이 죽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바로 그 법칙들이 대체 어디서 나왔으며, 거슬러 올라가면 “아무 것도 없지 않고 왜 무언가가 있는가”라는 근원적 의문은 남기 때문이다. 이는 라이프니츠가 던진 유명한 질문으로, 그는 결국 최종 원인으로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인 신으로 귀결할 수 밖에 없었다.

호킹은 그러나 “온전히 과학적인 범위 안에서 어떤 신적인 존재에도 호소하지 않고,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217쪽)고 주장한다. 과학계 무신론 운동의 선두주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이 책에 대해 신의 존재에 관한 논의를 종결시킬 수 있는 “결정적 한 방을 시도한다”고 환영했던 것도 이런 맥락일 터다.

우주의 시원(始原)에 대한 호킹의 설명은 우선 일반인들이 직관적인 수준에서 파악하기 대단히 어렵다. 그에 따르면, 우주는 137억년 전 10*cm라는 극미의 크기에서 팽창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고전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호킹이 적용하는 개념은 바로 극미 세계를 다루는 현대 양자이론들이다. 그 세계에서는 빈 공간이란 없으며 공간은 ‘양자 요동’을 겪는 상태, 즉 입자와 장들이 진동하듯이 생겼다 사라지는 상태다. 마찬가지로 우주도 양자 요동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탄생했다는 것인데, 비유하자면 끓는 물에서 무수한 수증기 거품 방울들이 형성되듯이 무수한 우주들이 보글보글 팽창ㆍ수축하다 소수가 재수축의 위험을 벗어나 급속히 팽창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우주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다중우주론으로 이어진다. 이 논리 속에서 창조과학의 ‘지적 설계론’은 기각된다. 인류가 존재하기까지 매우 정교한 물리법칙의 설계가 필요한 듯이 보이지만, 다중우주론으로 보면 우리의 우주도 수많은 우주 속에서 나온 대수롭지 않은 행운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호킹의 주장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며 우주에 대한 더 많은 관찰과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호킹은 무에서 유의 창조를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여전히 최초의 존재, 에너지든, 양자든, 거품 방울이든, 장이든 어떤 이름을 붙이든 간에 그 무엇이 왜,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명쾌하지 않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 “물리학 자체만으로 결코 ‘왜 무가 아닌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 영국 성공회 수장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비판에, 일단 손을 들어주고 싶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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