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빅스 지음ㆍ오현숙 옮김
삼인 발행ㆍ944쪽ㆍ3만5,000원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평화주의자로 포장됐던 히로히토(1901~1989) 전 일본 천황. 일본 내에서는 논의조차 금기시됐지만 그의 전쟁책임론은 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슈였다. 히로히토는 과연 일본 군부에 놀아난 허울뿐인 존재였을까.
미국과 일본에서 30년 이상 일본사를 강의해온 허버트 빅스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에서 ‘히로히토 꼭두각시론’을 전면적으로 반박한다. 그는 이 평전에서 전쟁기간 동안 히로히토가 내각 인사에서 외교정책까지 능동적으로 개입했으며 군 최고사령관인 대원수로서의 역할도 자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저자는 히로히토의 언동에 대한 각종 기록,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사상을 다룬 자료 등 방대한 사료를 섭렵했다.
평전은 히로히토의 전쟁책임론을 명백히 한다. 가령 그의 종전 결정은 일본에서 ‘성단(聖斷)’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저자가 폭로하는 성단의 실상은 다르다. 히로히토가 호전적인 군부 인사들과 손을 끊는 것을 주저함으로써 항복이 늦어졌고 이 때문에 막대한 인명 피해를 더했다는 것이다. 1945년 8월15일 히로히토의 항복방송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사흘 뒤 나온 ‘육해군인에게 내리는 칙어’는 히로히토의 진실을 드러낸다. 그는 이 칙어에서 항복 결정의 이유로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국체 수호’를 들고 있다.
저자는 또한 전후 히로히토의 반성없는 세월은 그가 정치적으로 무력하고 무해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줌로써 일본인들의 단결을 꾀하려 한 미국 외교정책의 산물이었다고 분석한다. 전쟁 피해자인 우리에게는 시원하고 전쟁책임론을 회피해온 일본으로서는 치부가 드러나는 책이다. 2001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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