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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왕의 밥상' 식사 거부한 세종 반찬수 줄인 영조… 밥상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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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왕의 밥상' 식사 거부한 세종 반찬수 줄인 영조… 밥상 정치학

입력
2010.10.0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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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지음

21세기북스 발행ㆍ320쪽ㆍ1만4,000원

조선 효종 8년, 송시열이 상소를 올렸다. “신이 듣건대 금년 봄에 영남의 한 장수가 울산의 전복을 매우 급히 내라고 독촉하면서 말하기를 ‘상께서 요구하셨다’라고 했답니다. 과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제왕의 존귀한 신분으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얼마나 큰 수모입니까. 항간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효종은 일반 백성들 사이에 소문이 퍼질 정도로 식탐을 부렸고, 이는 조정의 관심사가 됐다.

“거듭 탕평을 지시했음에도 아직도 당습에 얽매이는 모습이 개탄스럽다. 이것이 결국 과인이 교화를 잘못한 때문이 아닌가.” 탕평 정책을 편 영조는 재위 기간에 이 같은 이유 등을 들어 무려 89번이나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을 했다. 왕이 반찬을 줄이고 반성하고 있다고 선포하면 신하들도 눈치가 보여 노골적으로 당론을 제기하며 조정을 시끄럽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함규진 성균관대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원이 쓴 은 조선 왕 27명의 식생활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내 정리한 ‘밥상으로 보는 조선왕조사’이다.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을 놓고 ‘옛날 임금님도 부럽지 않다’고들 하지만 왕에게는 밥상조차도 정치의 무대였다. 밥상머리에서 보인 행동거지가 저마다 제각각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조선을 세운 태조는 무인 출신답게 고기를 유난히 즐겼지만 왕자의 난 이후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 채식만 했다. 태종은 재위 18년 동안 가뭄 등 자연재해나 가족의 상을 당해 감선을 15차례, 술을 마시지 않는 철주(撤酒)를 9차례 함으로써 ‘밥상에서 벌어지는 왕의 정치’의 기초를 닦았다.

말년에 불교에 의지해 궁궐 내에 법당을 세우려 한 세종은 자신이 키운 집현전 학사, 성균관 유생 등이 극렬히 반대하자 불쾌해져 여러 번 식사 거부를 했다.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감선을 단 2차례밖에 하지 않았고, 왕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먹고 마시는 문제를 중요시해 최초의 요리서인 ‘산가요록’과 최초의 식이요법서인 ‘식료찬요’를 펴내도록 했다.

성종은 대군 시절 한명회의 집에서 지낼 때 얻은 서병(暑病ㆍ더위 먹음)으로 물에 만 밥을 자주 찾았다. 일벌레였던 정조는 정무에 지친 마음을 담배로 달랬고, 고추장과 깍두기를 즐겼다.

조선 왕의 식단에는 곰발바닥, 제비집 같은 희한한 음식은 전혀 없었고 다만 다양한 재료를 써서 손을 많이 대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은 왕의 역할에 따른 정치의 밥상인 동시에 음양오행, 의식동원(醫食同源)설에 입각해 건강을 지키려 한 양생의 밥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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